ADVERTISEMENT

「내키지 않았던 사과」못마땅/「찻잔속 태풍」된 총리사표 전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문안수정 요구 묵살에 「시위성」반격/행정부­민정­민주계간의 갈등 입증
지난 3일 강영훈국무총리의 사과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였던 예산전용 문제가 사과문안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강총리가 5일 돌연 사표를 제출함으로써 정치권에 또 한차례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노태우대통령의 반려로 결국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지만 강총리로서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밝혔듯이 상당히 심각하게 사퇴문제를 생각했던 것 같다.
강총리는 국무위원들에게 『여야 총무회담에서 국회속개를 위해 87년도 특별기금확보계획에 따른 특별기금이 선거용 선심사업에 사용됐다는 것을 시인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사실을 확인해본 결과 예산은 합법적으로 사용됐더라』면서 『따라서 최소한 「선심용으로 오해될 수 있는 지역사업비」라고 표현을 수정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묵살돼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고 밝혔다.
강총리는 『그러나 국회의 정상운행을 위해 도와달라고 하기에 행정부의 잘못이 아닌데도 결과적으로 시인하는 꼴이 되어 마음속으로 총리직을 물러날 각오로 합의사항을 답변했다』고 밝히고 『이로 인해 각료들에게 죄를 지은 심정이고 내 자신 법과 원칙을 중시해왔는데도 이를 지키지 못해 끝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다』고 그간의 경위를 설명했다.
말하자면 강총리가 사퇴를 결심케 된 직접적인 배경은 사실이 아닌데도 사실로 시인하라고 해 마지못해 응한데 대한 불만과 이같은 행위가 자신의 평소 소신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행정부전체의 체면을 실추시켰다는 자책감에서 비롯된 것 같다.
물론 총리가 국회가 열리고 있는데도 이처럼 공개적으로 사표를 제출한 것은 사과 문안을 작성했던 민자당내 민주계,특히 김영삼대표에 대한 불만과 감정적 앙금이 크게 작용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 측근들의 얘기.
강총리는 여야총무가 총리의 사과문안에 대한 절충을 벌인 2일 이진비서실장을 국회로 보내 자신의 기본적 입장과 체면을 어느정도 감안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러나 김동영총무가 이를 묵살,사과문안 절충에 총리실을 완전히 배제하자 강총리는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강총리는 국회가 속개키로된 3일오전 박준규국회의장 방을 찾아가 『국회가 공전하는 일이 있더라도 여야 총무가 합의한 사과문안은 읽지 않겠다』고 강경히 버텼다. 그러자 갑작스런 총리의 반발에 놀란 박의장은 급히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김동영총무,김윤환정무장관,서정화수석부총무등을 의장실로 불러 강총리를 설득토록 했다.
그럼에도 강총리가 완강히 거부하며 버티자 김대표는 『대통령에게 이미 보고하고 재가를 받은 사항』이라며 총리에게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
강총리는 이 말이 믿기지않아 그 자리에서 노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정국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총리가 협조해 달라』는 대통령의 당부를 받고서야 사과문안을 읽겠다고 했다.
강총리는 이날부터 줄곧 화가 풀리지 않아 입을 굳게 다물었고 자신에게 치욕적인 「항복문서」를 강요한 김대표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끝내 사의를 표명,「시위성 반격」을 결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그동안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온 김영삼진영에 호락호락하게 보지 말라는 것을 과시하고 아울러 「법과 질서」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자신의 이미지를 확실히 하는 수단으로 사의표명을 택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사실 강총리의 사퇴 결심을 부채질한데는 민정계의 강한 불만과 각료들의 성원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계의 일부 중진의원과 행정위소속 민정계의원들은 강총리가 민주계의 요구에 쉽게 응한데 대해 이구동성으로 섭섭함을 표시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강총리의 사의표명으로 행정부와 민자당,민정계와 민주계간의 갈등은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강총리는 지난 88년 12월5일 취임해 1년7개월이라는 「장수총리」로 이제 할만큼 했으니 물러나도 모양좋게 물러나겠다는 생각을 평소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영삼대표에 대해서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나쁜 감정이 쌓여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귀띔이다.<문일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