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실질적 진전 기대/고위회담 절차 타결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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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군축논의 필요성 느껴/주변변화가 성사 앞당겨
남북한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남북 고위급회담의 실현가능성이 한결 높아졌다. 7ㆍ4 남북공동성명 발표 18주년을 하루 앞두고 3일 열린 제7차 예비회담에서 의제표기 순서에 합의함으로써 본회담과 관련한 절차문제가 모두 타결됐기 때문이다.
전도가 불투명하던 예비회담이 이처럼 순조롭게 타결된 것은 우리측이 북의 조건을 대폭 수용했고 북한측도 이제는 본회담을 성사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고위급회담 예비회담은 형식상으로는 의제표기 순서로 난항을 겪었지만 내용적으로는 북한측이 본회담을 성사시킬 의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회담의제 표기순서에서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문제」를 「교육협력실시문제」 앞에 표기한다는 북한측 주장을 수용한 것은 잇따른 동구권과의 수교와 한소 정상회담 실현등을 통해 높아진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동서독의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마당에 의제의 표기순서문제로 회담을 공전시키는 것은 국민들의 높아진 통일에 대한 열망과 기대에도 어긋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오히려 관심을 끄는 것은 북한측이 왜 선선히 응했는가는 점이다.
북한측은 지난달 20일자 전통문에서 『귀측의 사대주의적이고 분열주의적인 반민족 행위가 통일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귀측에 반성을 촉구하며 책임을 추궁할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한다』고 비난했고 이번 예비회담에서도 실질문제 토의보다는 대남 비방선전에 치중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북한측이 태도를 바꾼 배경은 ▲소련의 개방압력 ▲군축논의장의 필요성 ▲우리의 단독유엔가입 가능성에 대한 불안 ▲미국과 관계개선의 필요성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북한이 40여년간 외쳐온 군축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이 현재로선 고위급회담밖에 없다. 북한은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인한 경제파탄을 벗어나기 위해 군축을 실제로 필요로 하고 있는 것으로도 분석되고 있다.
또한 북한은 우리가 북방외교의 성과를 바탕으로 단독유엔가입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북한이 지난번 적십자회담 예비회담에서 성사직전에 혁명가극공연문제를 들고나와 회담을 결렬시킨 전력이 있어 오는 6일의 실무접촉이나 26일의 8차 회담에서 또다른 조건을 들고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이 비록 회담재개로 개방압력에 시간벌기를 노리고 있을지라도 우리측의 전향적 대응여하에 따라서는 남북관계가 한단계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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