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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철학자 볼테르의 품에서 과학의 열정 불태운 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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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마담 사이언티스트
원제: Passionate Minds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최세민 옮김
생각의나무, 432쪽, 1만5000원

불꽃 같은 삶을 산 프랑스 여류 과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를 주인공으로 한 '과학로맨스'다.

"당신은 아름다우니/ 인류의 절반은 당신의 적이 될 것이오/ 당신은 영민하니/ 사람들이 당신을 두려워 할 것이오/ 당신은 남을 잘 믿으니/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할 것이오"

18세기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였던 볼테르가 에밀리를 만난 직후 쓴 시다. 그리고 그의 일생은 꼭 시구대로 전개됐다.

여성 대다수가 결혼증명서에 자기 이름도 못 쓰던 시절, 에밀리는 베르길리우스와 뉴턴을 번역했다. 독학으로 익힌 수학 실력으로 귀족부인들과의 도박에서 큰 돈을 벌어서는 그 절반을 책을 사는 데 쓰기도 했다. 빛의 성질을 간파해내 사진술과 적외선 발견의 초석을 놓았으며, '에너지보존 법칙'을 연구하고,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공식 'E=mc2'의 기본개념도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추기경의 손자이자 장군으로 이름을 떨친 리슐리외, 아카데미 회원인 수학자 모페르튀, 당대의 문호 볼테르를 정부로 두고 염문을 뿌렸다.

하지만 에밀리는 철저하게 잊혀졌다. 생전에도 사교계 여성들은 이해 못할 소리만 한다고 입을 삐죽거렸지만 사후에는 여성이 그런 일을 해냈다는 자체가 너무나 이상한 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샤틀레 부인이 그런 탁월한 일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성이 턱수염을 길렀다는 것만큼이나 얼토당토 않은 소리"라고 썼다.

그러나 이는 신지식을 향한 에밀리의 열정을 모르고 한 이야기였다. 죽음에 임박해서도 잠잘 시간을 줄여가며 연구를 마무리하려 했다는 하인의 증언이나, 온갖 과학기구로 볼테르와의 사랑의 도피처를 가득 채우고도 목성을 관찰할 수 있는 반사망원경을 구입해 보내달라는 편지가 남아있을 정도다.

책의 재미와 수준은 일단 보장되어 있다. 'E=mc2', '시크릿 하우스' 등 쉽고 재미있는 책을 쓴 지은이의 작품이어서다. 과학이야기꾼 보더니스는 수년 간에 걸쳐 뒤져낸 에밀리의 편지 등 자료를 바탕으로 십년 간에 걸친 볼테르와 에밀리의 사랑과 당대의 문화를 꼼꼼하게 복원해 냈다.

지은이의 결론은 분명하다. 에밀리와 볼테르는 서로를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볼테르에게 에밀리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의 볼테르는 후대에 남을 작품을 쓰지 못했다는 근거에서다. 에밀리는 볼테르를 만나 자신의 지성을 맘껏 펼칠 수 있었다. 책을 읽은 여성은 결혼하기 힘들던 그 시절, 고등수학 교습을 밀회의 명분으로 삼거나 서로 영어와 사영기하학을 가르쳐주며 사랑을 나누는 '신여성'은 볼테르의 품이 아니었다면 설 자리가 없었으리란 설명이다.

연애담만큼 흥미롭지만 연애담 이상을 담고 있는 책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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