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독자 행보 고립만 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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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해법을 거듭 강조하면서 우방과 미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 빌 클린턴 행정부가 시도한 북한과의 양자회담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일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 최선의 길은 다른 나라들과 함께 동일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는 점을 교훈으로 배웠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다른 나라의 생각은 개의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그러면 고립만 심화할 뿐"이라고 했다.

이날 회견은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하는 북한을 상대로 미국이 6자회담 틀 밖에서 직접 협상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걸 못박은 것이다.

◆ 5자의 대북 포위 구도 형성=부시 대통령 회견 직후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 차관은 북한을 상대로 한 미국의 대응 전략을 짐작하게 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미 외교협회 연설에서 6자회담의 5개 당사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구도를 조성할 것임을 시사했다. 대북 직접협상을 하긴커녕 5자가 북한을 포위하는 모양새를 가다듬겠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경애하는 지도자'가 최근 벌인 일(핵실험)로 한국과 일본이 하나가 됐으며, 중국.러시아.일본.한국.미국이 결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수년간 중.일, 한.일의 매우 어려운 관계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입지를 취약하게 하면서 우리가 북한을 다루는 데도 약점으로 작용했지만 이들의 매우 중요한 관계가 이젠 (북한 핵실험으로) 봉합됐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실험 주장에 대해선 "그것이 핵실험이든, 진동이 발생한 것이든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신속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원래 6자회담보다 5자회담을 선호했다. "미국은 5자가 모여 당근과 채찍을 조율하고 그걸 북한에 제시하는 구도를 생각했으나 중국의 반대로 6자회담이 됐다"는 게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보좌관의 설명이다. 지난해 9.19 공동성명 직후 북한의 거부로 6자회담이 가동되지 않자 공화당 측에서 곧바로 5자회담을 하자는 얘기가 나온 이유는 여기에 있다.

◆ 한국.중국.러시아가 뒷받침할까=북한에 대한 5자 포위 구상이 성공하려면 한국과 중국과 러시아가 따라줘야 한다. 한국의 경우 6자회담이 열리지 않자 5자회담을 하자는 주장을 한 적이 있지만 그건 미국이 지금 그리고 있는 대북 압박 구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미국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철저히 봉쇄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로선 햇볕정책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보조를 맞추기 어렵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을 비난하면서도 미국.일본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따라서 5자가 빈틈없이 단결된 힘으로 북한을 몰아붙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번스 차관이 향후 미국이 꼭 점검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일본의 새 총리 등장 이후 한.일 관계▶중국.러시아의 협조 여부를 꼽은 것은 바로 이런 문제점을 염두에 둔 때문일 것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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