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범암살」 배후 꼭 밝힐터”/진상규명 위원장 권중희씨(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안두희씨 혼내주고 집유로 나와/암살 진상규명 서명운동도 벌여
『조국광복과 분단극복을 위해 전생애를 바친 백범선생 암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바로 비뚤어진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일입니다.』
26일 백범 김구선생서거 41주기를 맞아 이창원묘소를 찾은 「백범시해진상규명위원회」 권중희위원장(54ㆍ서울 대흥동3)의 의지는 결연했다.
권씨는 87년 3월27일 백범암살범 안두희씨(73ㆍ인천시 신흥동 D아파트)를 서울 마포구청앞 큰길에서 몽둥이로 「응징」,폭행치상죄로 구속기소돼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같은해 5월1일 풀려났었다. 그후 그는 스스로 「위원회」를 만들고 동숭동대학로와 파고다공원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10대때 「백범일지」를 읽고나서부터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민족선각자로 존경해왔어요. 그러던 어느날 암살범이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말할수 없는 비애와 울분을 느꼈습니다.』
경북 안동이 고향으로 학력이 전무한 그는 20세때 상경해 기원ㆍ레스토랑 등을 경영,부인 김영자씨(51)와 2남1녀를 부양하느라 30년 가까운 세월을 평범한 생활인으로 보냈다.
그가 소년시절부터 가져온 울분을 풀기 위해 「안두희감시인」이 된것은 84년부터.
안씨의 소재를 끈질기게 추적한 권씨는 3년만인 87년 2월28일 한해에 1,2차례씩 거주지를 옮겨다니며 은둔하던 안씨의 거처를 알아낸후 안씨에게 바둑친구로 접근해 기회를 노렸다.
마침내 천신만고끝에 「응징」에는 성공했지만 안씨의 침묵으로 의도했던 진실규명에는 끝내 실패했다.
이 일로 폭력전과자가 된 그는 도자기외판원을 하는 부인의 수입에 아예 가족들 생계를 내맡기고 진상규명에 전념했다.
옳은 일을 하겠다고 나선 그를 돕는 사람은 적지않았다. 그중에서도 우유대리점을 경영하는 이봉성씨(40) 재미교포 이옥규씨(45ㆍ여) 등은 서명운동 비용을 보내주기도 했다.
비록 지난해7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라면값을 못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 2만명선에서 서명운동을 마무리 했었다.
『민족반역자를 처벌하는데는 결코 시효가 있을수 없습니다. 만일 정부와 국회가 실정법 운운하며 진상규명을 외면한다면 국민운동차원에서 추진해야 합니다.』
권씨는 『용서받을수 없는 확신범인 안씨를 역사와 진실의 광장으로 끌어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다고』말했다.
권씨는 보증금 3백만원 월세 10만원의 2칸짜리 사글세방에서 다섯식구가 힘겹게 지내고 있다. 고1이던 막내아들의 학업도 도중하차시키고 자신도 1개월전부터 비디오가게 주인으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매일같이 친일파 관련서적을 탐독하는 그의 열정은 20대 대학생에 못지 않다.
『요즘은 모두가 민주다,통일이다 부르짖고 있지만 먼저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는 작업에 나서지 않는다면 공허한 말의 장난일 뿐입니다.』<이하경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