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냐, 묵인이냐 … 기로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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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기습적인 핵실험으로 중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미국의 편을 들면 북한과 완전히 척지는 것을 각오해야 하고, 북한의 행위를 묵과할 경우엔 국제사회의 비난과 따돌림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2002년 당 총서기에 취임한 후진타오(胡錦濤)가 집권 이후 가장 골치 아픈 국제 이슈를 만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 제재와 두둔 사이에서=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주도하는 대북 제재는 후 주석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경제 교류 중단과 군사적 봉쇄 등 미.일이 추진하는 각종 제재를 수용할 경우 중국으로부터 이탈하는 북한의 속도는 가속화할 위험성이 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심화하고 있는 중국 경제의 세계화 정도, 경제발전에 따라 상승하고 있는 중국의 정치적 위상을 감안한다면 서방의 제재 조치를 그냥 외면할 수도 없다. 일종의 심각한 딜레마 현상이 중국에 닥쳐 온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후 주석과 부시 대통령 간의 9일 전화통화에서도 드러났다. 후 주석은 북한에 대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행동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한편, 부시에게는 직접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 방법"을 강조했다. 양다리를 걸치는 중간 화법이다. 현재로서는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다는 점을 암시한 대목이다.

◆ 시련 맞은 북.중 관계=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중국의 수용은 7월 북한이 중국에 대한 사전 통보를 생략한 채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서 북한은 후 주석이 아베 일본 총리를 만나 "북한 핵실험은 안 된다"고 강조한 다음날 핵실험을 강행했다. 지난해 말 이후 꾸준히 악화 움직임을 보이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핵실험으로 절정에 오른 분위기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 내부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전면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고 있다"며 "핵실험 강행으로 중국은 국제적으로 위상이 한결 높아진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국제 정치적 지위도 흔들=동북아에서 유일하게 핵을 보유해 온 정치 대국이라는 중국의 위상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북한 핵에 영향을 받은 일본마저 핵 개발에 나설 경우 더욱 그렇다. 일단 북한의 핵 보유로 동북아 핵 도미노 상황의 '판도라 상자'는 열린 셈이다. 당장은 북한의 핵 보유가 사실로 인정될 경우 이웃한 지역인 한반도 북부에 핵 국가가 들어서는 셈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핵 전력을 포함한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동북아 맹주로서 미국과 일본의 동맹에 맞서려던 중국의 장기적인 대외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중국이 추구해 왔던 안정적인 구도는 이처럼 북한의 핵실험으로 흔들리고 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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