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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창립 40돌/중앙은행 역할 점검과 전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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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통화관리 새위상 정립할때 /「한은맨」자부심 다시 살려야
한국은행이 12일로 창립40주년을 맞는다.
6ㆍ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구조선은행 총재였던 구용서씨(작고)가 초대 총재에 취임하면서 중앙은행의 업무를 시작한후 현 17대 김건총재에 이르기까지 만40년간 한국은행이 걸어온 발자취는 곧 「금융으로 쓴 한국경제사」며,한시절 금융계는 물론 관계ㆍ업계ㆍ학계를 주름잡던 「한은맨」들은 이제 그 맥이 점점 엷어져가고 있지만 아직도 자부심만큼은 잊혀지지 않고 있다.
한은이 「불혹」의 나이에 이르는 동안 우리나라의 화폐단위는 원에서 환으로,다시 「원」으로 바뀌었고 한은법은 다섯차례 바뀌었으며 1인당 국민총생산은 60달러에서 5천달러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창립 40주년을 맞는 오늘의 한은은 뒤돌아보거나 되새겨보며 자부심을 키우는 일보다,앞을 내다보며 준비하고 새로운 위상을 정립해나가야 할일이 더 산적해 있다.
고대 농경사회의 물관리에 비길수 있는 오늘날 자본주의 화폐경제에서의 통화관리는 한은의 가장 중요한 첫번째 설립목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금융시장은 불과 1년반 앞으로 다가온 자본자유화의 물결에 대비하기보다 당장의 총통화증가율을 잡기위해 양건 예금에 대한 예대상계와 같은 편법의 통화관리로 하루하루가 꾸려지고 있는 형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점권」이니,「타입대」니,「꺾기」니 하는 금융관행이 버젓이 총통화 계수에 큰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는 상황에서 어차피 한번은 반드시 겪고 넘어가야할 금리자유화의 고비는 88년에야 한번 표방되었다가 89년초부터의 물리적인 통화환수로 물건너간뒤 12ㆍ12증시안정대책 등에 휩쓸려 거의 다 빛이 바래 버렸다.
지금과 같은 통화관리 방식으로 자본자유화의 물결을 맞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87년 대통령선거 직전부터 정치권의 구호로 다시 들먹여지기 시작했던 한은의 독립성 문제는 지난 한해 내내 계속된 재무부ㆍ한은간의 「소모전」끝에 일단 그대로 덮어는 놓았지만 여전히 그 불씨는 앙금처럼 남아 있는 상태다.
62년 5월24일의 한은법 1차개정이 혁명정부에 의해 금융통화위원회의 자문도 거치지 않은채 정부지배의 개발금융체제를 확보하기 위해 단행된 것이었으므로 당시 한은의 독립성이 크게 손상되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82년 12월31일의 제5차 한은법개정때 한은의 예산ㆍ결산 승인권이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 귀속됨으로써 한은 내부경영의 자율성은 다소 회복되었고,그같은 제도이전에 최근 은행감독원의 자료유출사건등에서 보듯 이제 예전과 같이 정부의 「독단」이 일방통행식으로 먹힐 분위기도 아니다.
한은의 독립이나 한은법의 개정문제가 「제도 이전에 운용의 문제」라는 것은 재무부에도 똑같이 적용될 명제지만 한은도 가두서명과 같은 「투쟁적」방법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쟁취」하려는 것이 제3자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성숙함을 지녀야할 때가 되긴 됐다.
창립 38년만인 지난 88년에 한은도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나름대로의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그간 한은 노조에 대졸행원은 거의 가입하고 있지 않다가 최근에야 약 2백여명의 대졸행원이 노조원이 되었다든가,지금까지 노조와 관리직이 서로 자기주장을 펴는 과정에서 「내용」이 아닌 「태도」때문에 급기야 송사로까지 일이 번져 「집안일」을 온 동네에 알리는 결과가 되었다든가 한 일들은 성숙된 중앙은행의 민주노조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일임에 틀림없다.
이밖에 재무부더러 관료적이라고 비난하는 한은이 정작 시은 사람들로부터는 재무부보다 더 관료적이라고 비난받고 있다거나,아직도 한은 조사부의 맥을 잇고 있는 「한은맨」들이 많지만 예전의 세칭 「배하주라인」과 같은 조사부 인맥의 긍지는 세태의 변화와 함께 많이 퇴색했다거나하는 일들도 창립 40주년을 맞는 「불혹의 중앙은행」이 다시 한번 새겨보아야 할 일일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중앙은행 제도의 발전은 중앙은행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정치권을 포함하는 광의의 정부와 금융제도 전반의 발전과 함께 가는 일이라는 점이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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