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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단은 언제까지 들러리만 설건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얼마전에 열린 제9회 국제 현대무용 축제(5월19∼24일)를 관람한 관객들은 거기에 참가한 외국무용단들의 명단만 훑어보고도 매우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초기에는 국내무용단들만 참가하던 이축제가 올림픽을 계기로 외국무용단들을 초청하기 시작한데다 특히 이번에는 세계의 다양한 나라무용단 (미국·소련·스위스·일본)들이 나란히 참가해 명실공히 무용에 있어서도 국제화를 실감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었던 것은 이 무용단들이 제각각 그들이 소속하고 있는 나라의 문화풍토를 대표하는 듯한 무용을 선보인 것이다,
미국 사피로 앤드 스미스무용단의 작품(탱고)은 두 남녀가 침대를 나누어 쓰는 사이에 만들어진 움직임들을 유머감각을 발휘해 엮은 듯했다.
남자는 크고 강하고 위트가 있으며 여자는 작고 퉁명스러우면서 실질적이다. 두사람의 힘이 만나서 균형을 이루다가 다시 그 균형이 깨어지면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나선다. 한장면 장면이 정교하게 계산이 되어있고 철저하게 힘의 중심끝까지 간다.
남녀 두 사람의 관계는 종속적이 아니라 대등하다. 그둘은 단지 체격과 힘의 차이가 있을뿐이다. 민주사회에서 낙관적으로 밝고 당당하게, 그리고 은연중에 일등국민임을 자부하고 살아 온 비굴하지 않은 미국의 땀을 볼수 있었다.
미국의 두 남녀가 실제 공연에서도 전혀 화장을 하지 않을 정도로 무대위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기를 주장한 반면, 소련 레닌그라드 국립무용단의 이인무는 관객을 위해 철저하게 즐거움을 제공할 대세를 갖추고 있었다. 우선 두 무용수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타고난 놀라운 체격과 장기간동안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겪어야만 발휘할 수있는 눈부신 기량을 갖추고 있었다.
무용의 내용은 미국과 같은 사랑이야기인데 그표현방법이 전혀 다르다. 바라보는 눈빛, 뻗는 손, 상대방에게 매달리는 동작, 격렬한 몸부림등이 더이상 아무도 하지 않는 옛날식 구애방법이다. 지나치게 관객을 의식하는 친절함때문에 오히러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간과할수 없다.
스위스 시노피아 무용단의 작품은 남녀이야기와 무관하다. 그들은 대기 속에서 별이 되어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고대의 제전을 그리워하면서 아프리카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든다.
쉽게 신체접촉을 하지않는 유럽인의 후예답게 각 무용수는 충분한 자기공간을 가지고 춤을 춘다. 무용의 마지막에 세명의 무용수는 무대밖으로 뛰어 나가버린다. 무대는 텅빈 하늘이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직도 찬란했던 견우성의 여운이 남아 있다.
일본 사이가 무용단은『소크라테스의 침묵』에서 시각적 요소를 십분 살리려 했지만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부토를 포함하여 그동안 한국을 방문한 다른 일본무용단에 비하면 이 무용단의 기량과 작품은 수준이 떨어졌다.
그러나 다른 무용수들의 젊고 건강하고 발랄한 춤에 비해 이 무용단 단원들은 나이가 많은 이들만이 가질수 있는 온화함을 드러낸 춤을 보여주었다.
이 무용제는 한국무용계의 국제화를 과시한 셈이나 유감스럽게도 주역인 한국무용단들의 수준이 아직도 국제적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것은 적어도 무용수의 문제라기 보다는 안무상의 문제로 보인다. 이미 국제적이라고 선언한 이 축제를 아직도 집안잔치로 오해하고 있는 무용가가 있는 한 한국무용단들은 항상 외국무용단들의 들러리나 서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무용가·경성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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