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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소정권 건 시장경제 도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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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장경제로의 길을 택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경제개혁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고질적 분쟁지역인 중동과 인도 카슈미르지방에선 민족분규로 수백 명이 살상되는 비극이 되풀이된 1주일이었다.
때마침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이 우여곡절 끝에 실현됐고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가 소집돼 한반도가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일왕의 사과문제로 방일출발직전까지 계속된 한일간 줄다리기는 「통석의 념」이란 절묘한 표현으로 매듭을 지었고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김일성의 「유일적 영도」체제와 김정일 후계체제를 굳히는 것으로 끝났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변화 속에서도 지난 1주일동안 세계의 관심을 가장 끈 것은 뭐니뭐니해도 소련의 경제개혁 움직임이다.
지난 24일 리슈코프총리에 의해 소연방최고회의에 보고된 이 경제개혁안은 「제2의 러시아혁명」이라고 할 만큼 실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오는 95년까지 3단계로 나뉘어 실시되는 이 개혁안은 60년 이상 지속돼온 중앙계획경제를 폐지하고 국가가 조정역만 맡아 사실상의 시장경제로 전환한다는 것을 그 골간으로 하고 있다.
개혁안의 주요내용은 ▲각 기업에 생산계획 등에 대폭적인 자주권을 부여하고 ▲상품·도매·주식시장 등을 창설하여 시장메커니즘을 도입하며 ▲가격통제제를 폐지해 내년부터 식료품 등 생필품가격을 대폭 현실화하고 ▲루블화에 대한 평가절하를 계속하며 ▲서방자본도입을 위해 자유경제구역을 설치한다는 등으로 되어있다.
영국의 한 경제전문가가 『이번 개혁안은 마치영국에서 관행이 되어온 자동차의 좌측통행을 우측통행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것』 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개혁조치 발표후 사재기 열풍이 불어 상점마다 진열장이 텅텅 비어 버렸고, 특히 곡물·밀가루·마카로니 등 식료품은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다.
이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 고르바초프로서는 자신의 운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사태수습에 진력할 것이고 고르바초프의 「건재」가 세계정세의 안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서방세계가 어떤 형식이나 경로로든 간에 그를 도와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반드시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소련과 함께 루마니아가 향후 3년 내에 자유시장체제로 전환할 것을 검토하고 있고 중국도 토지사유화를 허용하는 입법조치를 단행해 사회주의 국가들이 속속 보다 큰 파이를 만들기 위한 경제의 효율화작업에 착수하고있음을 보여줬다.
한편 지난 21일 인도의 카슈미르주 스리나가르시에서 발생한 회교지도자 파루크 제사장에 대한 피살사건은 6백여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는 사태로 발전돼 가뜩이나 고조되고 있는 인도-파키스탄간 전운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다행히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나 인도의 싱 총리가 모두 국내 정치기반이 약하고 양국 모두 핵무기제조능력이 있어 공동파멸로 치달을 전면전으로까지는 확대되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의 또 다른 화약고로 알려진 중동에서 지난 20일 이스라엘군 출신청년이 자동소총을 난사, 팔레스타인인 7명을 죽인 사건은 국제문제로 확산돼 긴급 유엔안보리가 소집되는 사대로까지 발전했다.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발생한 이 사건이 확산되면서 팔레스타인지도자들은 대이스라엘 보복을 선언하고 나섰고 항상 이스라엘의 편에 섰던 미국마저 이번에는 아랍국가들의 주장에 동조, 미-이관계가 악화되는 등 복잡성을 더해가고 있다.
고흥길 (외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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