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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in] '글로벌 지식인' 추사의 향연이 펼쳐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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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그런데 왜 추사인가. 올해는 조선시대 대학자이자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가 타계한 지 150주년이 되는 해다. 그의 기일(음력 10월 10일)을 기린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캘린더성' 기획? 대답은 '아니오'다. 2006년 '한류열풍'과 '인문학의 위기'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한국의 문화지형도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된다.

추사는 잘 알려진 대로 당대 중국학자들이 선망했던 스타 작가이자 중국이란 '선진국'의 학문을 한국화한 글로벌 지식인이다. 전시 또한 국립중앙박물관.간송미술관.예술의전당 등 한국의 대표적 문화기관이 기획했다. 추사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공개되는 셈이다. 타계 사흘 전에도 서울 봉은사 '판전(板殿)' 현판 글씨를 썼던 추사에 한번 푹 빠져보자. 어떤가. 올 가을이 기대되지 않는가.

'소문난 집에 먹을 게 없다'고 한다. 허장성세(虛張聲勢)를 경계한 말이다. 그러나 올 가을을 화려하게 물들인 추사 관련 전시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소문난 전시에 볼 게 많다'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중요한 건 전시만이 아니다. 19세기 한국과 중국의 문화를 연결했던 추사의 세계성을 고민해야 한다. 멋진 작품을 즐긴 다음 찾아오는 예술적 포만감도 좋지만 그 뒤에 숨겨진 추사의 시대정신을 읽어야 한다.

사실 추사는 '한류의 원조'로 평가된다. 일본 학자 후지쓰카 아키나오(藤塚明直)는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며 배우 배용준이 일본 여성을 매료시켰다. 이와 같은 일이 18세기 말~19세기 초 중국 베이징에서도 일어났다. 김정희는 청조문화의 진수를 체득해 중국인도 열광시켰다"라고 말했다.

시대정신의 핵심은 국제화.세계화다. 예컨대 추사는 당대 서울과 베이징의 중심에 서 있었다. 청나라를 '오랑캐'로 여기고 국제적 흐름에 둔감했던 당대의 많은 사대부와 달리 추사는 일찍부터 청조의 고증학(考證學)에 눈을 뜨고, 조선에 실학 기풍을 진작시킨 실사구시의 학자이자 예술가였다. 오죽하면 그의 사후에도 그의 글씨를 보내달라는 중국 학자의 요청이 끊이지 않았을까. 5개 특별전의 키워드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경기도 과천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추사 글씨 귀향전:후지쓰카 기증 추사 자료전'은 추사의 국제성을 한눈에 확인하는 자리다. 추사 연구의 선구자였던 일본인 후지쓰카 지카시(藤塚)가 소장했던 유물 1만여점을 그의 아들 후지쓰카 아키나오가 올해 과천시에 기증한 것 가운데 '고갱이' 100여 점을 추렸다. 추사가 그의 두 아우와 제자인 이상적에게 보낸 편지 26건이 처음 공개된다.

하이라이트는 당대 한국과 중국의 학자가 주고받았던 서책이다. 후지쓰카 지카시는 일제시대 서울.베이징에서 양국의 교류 자료를 방대하게 수집했다. 청나라 학자가 조선의 학자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청대학자서간첩', 추사가 베이징에서 서울로 돌아갈 때 중국 학자들이 추사에게 열어준 잔치를 그린 '증추사동귀시도임모', 총 680책에 이르는 청대 고증학의 정수인 '황청경해' 등 귀중한 사료가 대거 선보인다.

'추사 김정희:학예일치의 경지'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했다. '세한도''불이선란도' 같은 명품 90여 점이 출품된다. 도록으로만 소개됐던 '잔서완석루'도 처음 나온다. 추사의 동반자였던 김근유.권돈인.초의선사의 작품, 추사의 스승이었던 중국 학자 옹방강의 편지, 추사에게 영향을 받았던 후학들의 서예.회화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제주박물관(12월 4일~2007년 1월 21일)으로 이어진다.

'명선' '선개비불' 등 추사의 걸작을 가장 많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간송미술관도 특별전을 연다. 총 100여 점이 소개된다. 올 5월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62) 선생의 탄신 100돌 기념 특별전을 열었던 미술관 측은 추사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미술관을 40년간 지켜온 최완수 연구실장은 "시.서.화 전반을 망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미술관 리움도 장승업.허련 등 대가들을 재조명하는 '조선말기 회화전'에서 추사의 글씨를 모은 특별실을 따로 마련한다. 예서(隸書)로 쓴 '죽로지실''유천희해' 등과 추사의 영향을 받은 이한철.노희룡.허련.이하응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예술의전당은 연말 추사 특별전의 대미를 장식할 예정. 글씨.그림.전각.한중교류.추사서파.경학.불학 등 10개 분야에 걸쳐 총 200여 점이 나온다. 추사가 어머니.할머니 등에 보낸 한글 편지도 첫 선을 보인다.

19세기 중국에는 '완당 바람'이 불었다. 추사의 작품을 구하려는 중국인의 열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21세기 초반에 불어닥친 '추사 바람'이 우리 문화계에 어떤 충격을 줄 수 있을까.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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