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향수(鄕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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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향수(鄕愁)'- 고은(1933~ )

제청 제청(諦聽 諦聽)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하늘 아래, 손사래로

내 지은 옛을 가린다 해도,

다 아쉬운 바람귀 두려워 오니

어디만큼이뇨 노을을 사고.

그리하여 시름을 마치

비 긋는 숨으로 쉬듯

눈 감은 다음, 보아라.

이내 어릴 적 저녁

무지개의 허리여.



노을을 사고 큰 숨 쉰 다음, 눈 감아 무지개의 허리를 바라본다. 어린 날 큰 뜻 일러주던 무지개였을 것이다. 어느 초상집에서 밤새우고 '징개맹개벌(김제 만경평야)'의 아침 노을을 바라보았었다. 찬란하고 서글픈 아침이었는데 표현하라면 비문(非文)일밖에 없었다. 띄엄띄엄, 향수의 간격에 떨어져 내린 천길 벼락이여. '내 지은 옛'이여.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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