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e] "드레스 안에 레깅스, 세련된 편안함이 뉴욕 스타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도나 카란. 가장 뉴욕적인 스타일을 만드는, 뉴욕 패션계를 대표하는 여성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이름.

그가 올해도 어김없이 컬렉션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이힐을 신으니 족히 1m80㎝가 넘어보이는 훤칠한 키. 쏟아지는 박수 갈채를 즐기는 듯한 무대 인사는 자신감이 넘친다. 가히 여장부라 부를 만하다.

20년 넘게 DKNY(Donna Karan New York)라는 거대 패션 브랜드를 이끌어 온 그를 15일 '도나 카란 컬렉션'라인의 패션쇼가 끝난 직후 뉴욕에서 만났다.(도나 카란 컬렉션은 DKNY보다 한 단계 높은 최고급 라인의 브랜드다).

# 뉴욕 스타일은 재조합의 미학

"이번 시즌의 컨셉트는 특성의 대비입니다.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 어두움과 밝음, 서양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 등으로 설명할 수 있겠죠. 이스라엘의 군대에서 받은 느낌들, 아프리카, 중국풍 등 모든 문화적 요소가 합쳐진 것. 파리에 있는 아프리카 박물관의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뉴욕 스타일이란, 도시적인 스타일이란 무엇인가'이죠."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 성장한 오리지널 뉴요커다. 이번 시즌 컨셉트를 설명하면서도 '뉴욕 스타일'이란 말을 강조했다. 그것은 바로 "편안함과 고전적인 아름다움"이다.

"뉴욕 스타일은 모든 것을 취사 선택해 재조합하는 것이죠. 그러나 복잡함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난 지금 드레스 안에 레깅스를 받쳐 입고 보디 수트를 입고 있어요.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그것이 바로 뉴욕 스타일이죠."

바로 이거다. 움직이는 편안함 속에 깔끔한 아름다움. DKNY 패션쇼에서 보여준 원피스 드레스와 야구 모자의 조합이 정확한 예가 될 듯하다.

# 한국은 한국다워야 한다

최근 한국에선 '된장녀'라는 말이 화두다. '섹스 앤드 시티'같은 드라마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된장녀 논란은 쉽게 말해 뉴요커 따라잡기라는 말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도나 카란의 생각은 어떨까?

"한국은 한국답고, 파리는 파리다워야죠. 세계화라는 말과는 달라요. 세계화는 단순히 어디를 가고 싶고, 그곳의 문화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죠."

가장 세계적인 도시라는 뉴욕에서 그는 표면적인 세계화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난 뉴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다른 문화적 요소를 이곳에 녹여내야죠. 그것이 바로 뉴욕이에요."

다른 문화의 영향은 받을지언정 뉴욕 특유의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일 게다. 역시 문화란 그 도시에서 호흡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맞게 변형되고 체득되어야 한다.

# 여성을 위한 디자인, 그리고 가족

남성 디자이너는 보기 좋은 옷을 만들고, 여성 디자이너는 입고 싶은 옷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카란은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속옷의 일종인 '보디 수트'를 겉으로 끄집어낸 것도 그의 작품이다. '보디 수트'는 카란에게 '여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몸을 이해합니다. 그 복잡함과 섬세함, 그리고 느낌까지. 이건 되고 이건 안 되고, 이건 너무 뚱뚱하고 이건 너무 마르고.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모두 느낄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죠."

그가 소중히 여기는 또 다른 가치관은 '가족이 최우선'이라는 명제다. 그의 패션쇼가 열리는 장소는 뉴욕 웨스트 빌리지 그리니치가에 있는 한 스튜디오다. 뉴욕 패션 위크의 주무대인 브라이언트 파크나 랄프 로렌, 캘빈 클라인, 마크 제이콥스 등 다른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시내 중심가의 개별 무대와도 성격이 많이 다른 곳이다.

이곳은 작고한 남편 스테판 위스(Weiss)의 작업실. 조각가였던 그는 1984년 카란이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을 때부터 줄곧 그를 도왔다. 그가 이곳을 고집하는 이유도 인생의 조력자였던 남편에 대한 식지 않는 애정 때문이다. 패션쇼에서도 가족을 대동한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손녀의 손을 잡고 쇼 장을 거닐곤 한다.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드는 여성이자 한 가족의 어머니임을 소중히 생각하는, 가장 미국적인 여성상의 전형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 에너지의 원천은 나의 일

카란은 올해 58세다. 내일모레면 환갑이란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언제나 카리스마가 넘친다. 날이 갈수록 남성 디자이너들의 입김이 세지고 있는 패션계에서 그녀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다.

"난 지나간 일은 생각지 않아요.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죠. 방금 쇼를 끝냈지만 다음 쇼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이렇게 일에 빠지면 늙지 않는 것일까? "물론 요가도 하고, 음식에도 신경 쓰죠. 내 삶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해요. 그렇지만 난 내 일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 일이 바로 내 삶이죠."

그가 전망한 패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패션은 아주 빨리 움직이죠. 현재도 개인의 구미에 맞는 아주 많은 스타일이 존재하고요. 앞으로도 보다 많은 표현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뉴욕=조도연 기자

도나 카란은 1948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뉴욕의 디자인 학교인 파슨스 디자인 스쿨 2학년 때 당시 유명 디자이너였던 앤 클라인 밑에서 일하면서 패션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앤 클라인 사후 75년부터 앤클라인사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했고, 85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인 DKNY를 출범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블랙을 위주로 한 색상에 여성의 몸을 구속하지 않는 편안한 실루엣의 의상으로 뉴욕 직장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미국 패션 협회(CFDA)는 85.90.96년 세 차례나 그를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했고, 2004년엔 평생 공로상을 수여했다. 또 같은 해 모교인 파슨스 디자인 스쿨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프랑스 럭셔리 그룹 LVMH에 인수된 도나 카란 인터내셔널은 여성복, 남성복, 액세서리는 물론 란제리와 홈 컬렉션까지 전개하고 있는 거대 패션 그룹이다.

조도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