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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살리기' 독자가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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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 의한, 독자들의 ‘만화대상’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행사준비에 들어갔다. 지난 여름 인터넷 공고를 통해 모집한 약 20명의 실무진이 ‘독자만화대상 2003’준비모임을 결성하고 다음주 홈페이지(www.comicreader.org)의 문을 연다.

‘독자만화대상’은 상금은 물론이고 그 흔한 상패 하나 없이도 지난해 만화계에 신선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상의 제정에서 수상작 선정까지 전 과정을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한 경우는 만화계뿐 아니라 다른 문화예술 장르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기 때문이었다.

준비에 바쁜 실무진 가운데 다섯 사람을 만났다. 초등학교 교사.이공계 연구원.대학생 등 다양한 직업의 이들은 저마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만화에 대한 사랑을 털어놓았다.

지난해 행사를 지켜보고 올해 준비모임에 지원한 최한창(21)씨는 "첫사랑이 만화방 누나였다"면서 "남자이지만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제 취향을 설득력있게 얘기하고 싶어 인터넷 다음카페의 만화비평모임에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보배(20)씨는 "문학소녀였던 저는 글과 그림의 조합으로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만화의 매력에 빠져 '만화소녀'로 바뀌었다"면서 "만화는 청소년 시절 한때가 아니라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장르"라고 말했다. 정윤식(20)씨 역시 "아버지가 사다주신 다양한 만화를 통한 간접경험이 소극적인 성격을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들이 독자만화대상에 참여하게 된 것은 자신과 같은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이 침체한 우리 만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박관형(32)씨는 "창작 여건만 뒷받침된다면 훨씬 좋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우리 만화가들의 역량"이라면서 "발표 지면이 잡지 연재 위주이다 보니 호흡이 긴 작품은 독자와 만날 기회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에 이어 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조영희(29)씨는 "연재 중단된 만화 살리기.공동구매 같은 활동뿐 아니라 좀더 직접적으로 독자의 목소리를 들려주자는 취지에서 상의 제정을 제안했다"면서 "독자만화대상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만화축제"라고 설명했다.

아마추어들의 행사라고 얕보면 곤란하다. 지난해 10월 '올쏘''만화인''두고보자'등 인터넷 만화관련 사이트 10여곳의 운영자.회원이 중심이 되어 준비모임을 가졌다. 이후 2개월여 동안 온라인으로 후보작 추천과 투표인 등록을 받아 최종적으로 네티즌 2천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부문별 수상작을 뽑았다.

이런 과정을 정리해 펴낸 백서'독자만화대상 2002'(길찾기.5천원)는 장편.단편.시사풍자.온라인만화.신인작가.만화관련서적 등 부문별 후보작은 물론이고 수상작가 인터뷰와 공모로 뽑은 비평글까지 실어 지난 한 해 동안 독자들을 열광시킨 만화계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줬다.

앞으로 이들은 수상작에 대한 일본어.영어 사이트도 만들어 우리 만화를 세계에 소개하는 온라인 창구로 활용할 꿈도 갖고 있다. 물론 자발적인 모임이다 보니 앞날을 내다보기가 쉽지는 않다. "최소한 10년간 이 상을 유지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문화관광부가 시상해온 '오늘의 우리만화'상도 올 하반기부터 한국만화가협회.우리만화연대 등 민간단체가 선정과정을 주관하는 방식으로 바뀔 예정이다.

이후남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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