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내마음의 왕국(59)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이 길이 바로 어머니와 함께 걷던 그 길이었다. 삼십년 전의 그 길을 이제는 아내와 함께 걷는다. 꼬박 저 큰길에서부터 걸어 아내와 함께 걷는다. 꼬박 저 큰길에서부터 걸어오던 그 먼길을 이제는 단숨에 숲길을 올라 무덤에 이르른다. 삼십년 전 어머니와 함께 오른던 이 길에 이제는 어머니는 없다. 어머니는 간곳이 없고 나기고 간 한줌의 뼛가루 뿐이다. 내 머리 속으로 불교의 경전 중에서 초기 경전인 남전대장경에 수록되어있는 시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흔히 「슛타니 파아타」라고 불려지는 이 시경 속에서 부처는 육성에 가까운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아, 짧도다. 인간의 생명이여.
그대, 백살도 못되어 죽어버리는가.
아무리 오래 산다해도 결국은 늙어서 죽는 것을.
사람들은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물건 때문에 근심한다. 자기가 소유한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 것은 모두 변하고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집에 머물러 있지 말아라.
눈을 뜬 사람은 꿈속에서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 볼 수 없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한번 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
누구누구라고 하던 사람들도 한번 죽은 후에는 그 이름만이 남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부처여.
그대의 말처럼 꿈속에서 만난 사람은 깨어 눈을 뜨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어머니와 함께 걸었던 그 먼길은 한갓 내가 꿈꾸었던 백일몽이었습니다. 그 꿈을 깨고나니 다 간곳이 없습니다. 그 숲길도, 그 꽃들도, 뻐꾹뻐꾹 슬픈 소리로 울어에던 그 뻐꾸기 소리도 다 간곳이 없습니다. 그 뿐아니라 그 때 함께 걷던 어머니도 간곳이 없습니다. 간곳이 없이 사라져버리고 한갓 소기한 뼛가루가 되어 내손에 들려져 있습니다.
갑자기 숲길이 끊어지고 공터가 나타났다.
작은 언덕을 깎아 만든 분지 속에 두 개의 무덤이 누워 있었다. 그 누구도 돌보지 않는 무덤이었으므로 무덤가에는 지난 해의 풀들이 웃자라 있었고, 무덤가에는 잡목들과 잡초들이 우거져 황폐하게 변해 있었다.
아내는 지금껏 한번도 말조처 꺼내지 않았던 아버지, 그러니까 자신의 시아버지 무덤에 마침내 이르렀음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아버지의 무덤 앞에는 아버지의 존재를 나태내 보일 수 있는 묘비도, 석등도, 묘석도 남아 있지 않음이었다.
다만 아버지의 무덤과 나란히 누워 있는, 민비에 의해서 비참하게 죽어간 생모 장씨의 무덤 앞에만 다음과 같이 묘비가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구인 덕수장씨지초』
최인호 이우절 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