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의 히스테리 증후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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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그 긴장도가 거의 폭발 직전에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것은 단지 이즈막의 정치적ㆍ경제적 갈등에서 직접 유래했다기 보다는 오랜 기간 누적되어온 사회적 스트레스가 한계점에 달해 자극적인 계기를 만나기만 하면 툭툭 터져나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짝사랑하는 여인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가스통을 불질러 폭발시키는가 하면 당구시합에 졌다고 상대방을 목졸라 숨지게 하기도 하며 방세를 안낸다고 방에 불을 질러버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젠 기본적인 가족관계마저 해체위기에 놓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반인륜적 행위마저 빈발하고 있다. 용돈문제로 아들의 아버지에게 칼부림을 하고 4살짜리 아이가 칭얼거린다고 내던져 죽게 만든 아버지도 있었다.
지난 7일 서울지하철역에서 승객들이 전동차가 늦게 도착했다고 전동차의 유리창을 깨고 역장을 때린 것도 사회적 히스테리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요즘의 정치적ㆍ경제적 갈등도 갈등이지만 일상사 속에서 흔히 빚어지고 있는 이러한 조급하고 격정적이며 폭력적인 행위들이 실은 사회의 긴장을 한층 더 증폭시키고 시민의 삶에 갈수록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회 전체가 학자들이 말하는 집단히스테리의 악순환에 빠져있는 것이다.
안타깝고 불행한 것은 그 근본적인 원인이 개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데서 비롯되는 것이어서 그 치유도 어렵고 장기적인 시간을 요한다는 점이다.
부도덕한 권력의 오랜 폭력적 정치,그리고 그에 대항하면서 굳어진 폭력의 정당화 풍조,성장위주와 급격한 경제개발의 부작용인 천민자본주의의 만개와 상대적 소외층의 양산 등등이 바로 그 역사적ㆍ구조적 요인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정부를 포함한 정치권이 사회의 히스테리적 징후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사회적 히스테리를 이미 권위를 크게 손상당한 법과 그에 근거한 물리력으로 억누르기만 해서 치유하기는 어렵다. 일정한 수준까지는 법의 권위와 힘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최근의 KBS사태나 현중사태에서 경험한 것처럼 과잉된 물리력은 오히려 사태의 악화를 낳고 법경시와 폭력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켜줄 뿐이다.
해결책은 주전자 뚜껑에 구멍을 뚫어 놓는 것처럼 사회의 불만과 그로 인한 긴장을 질서있고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이른바 「갈등처리의 제도화」일 것이다. 아울러 정치권력의 도덕적 정당성을 강화해 국민들에게 설사 불만이 당장 해결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점진적,그리고 합리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와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 사회에도 자제하고 인내하는 기풍이 조성될 수 있고 그것은 개개인의 일상사에도 은연중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권력의 도덕적 정당성 확립은 구체적으로는 사회정의에 합당한 정책의 지속적인 축적에서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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