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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마하티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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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는 의사였다. 1925년생인 그는 싱가포르의 킹 에드워드 7세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당시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영토였다. 64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81년 총리로 취임했다. 취임 직후 한국과 일본의 노동 윤리를 배우자는 동방정책(Look East)을 펼치며 고무와 주석밖에 팔 것이 없던 말레이시아를 제조업 생산기지로 탈바꿈시켰다. 22년 동안 말레이시아를 이끈 그는 이달 말에 자진 퇴임할 예정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 중 최장수를 기록하고 있는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 얘기다.

그는 독설가로도 유명하다. 97년 동남아 금융위기가 조지 소로스 등 유대인 금융자본가들의 농간 때문이라고 공격하는 등 반(反)서방 발언을 서슴지 않아 '말레이시아의 IBM(International Big Mouth)'이란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그가 퇴임 직전에 또 사고(?)를 쳤다. 지난주 이슬람 지도자 정상회의에서 그는 "유대인이 꼭두각시를 내세워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당연히 서방 세계가 발끈하고 나섰다. 유럽연합(EU)은 정상회의에서 마하티르 총리를 비난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려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의 만류로 겨우 자제하고 이탈리아 총리 등이 기자회견에서 마하티르를 비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엊그제 마하티르 총리에게 "틀린 내용이며 분열적인 얘기"라고 비판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마하티르 총리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하는 일도 있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최근 이슬람 원리주의를 배격하고 관용과 문화 다원주의를 호소하는 등 이슬람 국가에선 드물게 중용(中庸)의 목소리를 낸 정치가라고 평가했다. 반면 언론 자유와 인권을 억누르고 아시아와 이슬람의 대변자를 자처한 데 대한 서방의 시각은 곱지 않다.

하지만 열정과 일관된 비전을 갖고 워크홀릭(일 중독자)처럼 일해 말레이시아를 수술해낸 걸출한 지도자라는 점에 대해선 별다른 이의가 없는 것 같다. 독재자에 가까운 권위주의적 지도자지만 열정과 비전으로 이뤄낸 그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지 않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열정과 비전이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