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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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 기민
조선시를 쓰라
백성들이 문다
저 갓 패어난 보리 이삭처럼
핏기 마른 머리칼을 세우고
꺼이꺼이 부황난 봄을
백성들이 울고 간다
무엇으로 때울꺼나
아홉 고을 물이 흘러드는
탐진의 갯벌 같은 목숨
어디가서 만날꺼나
한 포기 구황의 풀을
밤이 이슥토록
들기름불 심지 돋우고
내 외로운 뼈 쳐들어
목민심서를 쓰노니
저를 더불어 초유처럼 우노니
먹을 갈라
주린 백성들의 슬픔으로 붓을 세워
한량없는 어둠을 끄라
기민시를 쓰라
기민시를 쓰라.

<2. 흑산도>
오늘따라 눈이 흐리다
해는 중천에 떠있는데 어디서 몰려왔는지 한 떼의 황사바람이 다도해의 하늘을 덮고 있다. 서럽고 서러운 일사이적의 가슴을 검은 흙비로 쏟아 부으려는가, 우리 형제 흘려 보낸 한이여 아픔이 넘쳐 이 만덕산 중턱까지 해일로 올라 오려는가, 부질없구나, 읽어줄 지기가 없는데 간권의 책을 써서 무엇하랴, 붓을 꺾고 내 혼을 던져 저 사납고 캄캄한 바다의 끝에 닿게 하리라.
※일사이적:형제 중 하나는 죽고 둘은 유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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