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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칼럼

망자의 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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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주말에 벌초와 성묘를 하러 선산에 다녀왔습니다. 도시를 벗어나는 것만으로 가슴이 푼더분해집니다. 경운기를 타고 포도밭을 지나며 얼마 전 끝난 TV 드라마 주인공 같은 낭만을 느껴보기도 했지요. 마침 선산이 그 드라마의 배경이 됐던 곳 근처라서요. 오랜만에 보는 맨드라미며 샐비어도 반가웠습니다. 지천으로 널린 이름 모를 야생화들은 또 어떻고요. 그야말로 감성 충전 100%였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것만은 아닙니다. 간단한 벌초가 아니거든요. 예초기 2대와 갈퀴 5개, 낫 3자루, 톱 하나를 메고 가서 봉분 17기의 풀을 깎아야 합니다. 나란히 모여 있지도 않습니다. 이 산자락, 저 산등성에 제 맘대로 널려 있는 무덤들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명당에 묘를 쓰려는 욕심 탓이었겠지요.

이해는 가지만 후손들은 죽을 맛입니다. 해마다 찾는 산인데도 갈 때마다 길을 못 찾아 헤맵니다. 우거진 잡초와 칡넝쿨을 쳐내고 길을 만들며 나아가야 하지요. 빨치산처럼 산을 타면서 묘를 옮겨다니다 보니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산이 무덤 천지가 돼서야 쓰겠느냐 이 말이지요. 올라오는 열차 창밖으로 보이는 산들도 크고 작은 무덤으로 '땜통'투성이입니다. 어떻게 좀 바꿔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서양의 장묘 문화가 부럽습니다. 교회 지하실에 시체를 던져버리던 야만적 시절이 있긴 했습니다만 그들에게는 묘지가 혐오 시설이 아니지요. 오히려 망자들을 추억하며 쉬는 휴식 공간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페르라셰즈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서는 유명가수나 작가의 무덤을 찾은 팬들이 온종일 즐기며 노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영국 런던 근교의 켄설 그린 공동묘지에는 85종의 새가 산다지요. 미국 LA의 로즈힐 추모공원에는 600여 종의 장미 7000그루가 자랍니다. 묘지가 시민들의 자연학습장 역할까지 하는 겁니다. 우리도 이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오랜 풍습과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야 있나요.

우리 장묘 문화는 풍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장풍득수(藏風得水) 말입니다. 본래 중국 것인데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꽃을 피웠지요. 조상을 섬기는 유교 윤리가 조상의 음덕으로 발복을 기원하는 풍수사상과 맞아떨어진 결과입니다. 좀 더 좋은 자리에 좀 더 큰 무덤을 만드는 허례와 자연파괴가 생겨나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요.

중국의 장묘 문화는 보다 자연친화적입니다. 마오쩌둥이 화장을 명한 빈장(殯葬)혁명 이전도 역시 그렇습니다. 삼국지 위서(魏書)를 보면 조조가 생전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며 "예로부터 매장은 반드시 척박한 땅에 했다. 봉분을 만들지 말고 나무도 심지 말라"고 했다잖습니까. 유비 묘로 알려진 혜릉이나 제갈량의 묘 위에도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중국식 수목장입니다. 받침대 위에 시신을 놓고 풀로 덮는 데서 한자의 장(葬)자가 나왔다고 하지요. 무덤 위에 초목이 자라게 내버려둠으로써 자연 회귀를 이루는 것입니다.

조상을 잘 모시려는 생각이 무에 나쁘겠습니까. 하지만 좁은 땅덩어리가 문제지요. 현재 국민 1인당 평균 주거공간은 4.3평인데 묘지는 평균 15평이랍니다. 매년 여의도만 한 묘지가 새로 생기고 이로 인한 경제손실이 연간 4조원에 달한다지요. 이런 관행이 계속되면 수도권은 3년, 전국적으로는 10년 내에 묘지 공급이 한계에 도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걱정입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어 다행스럽습니다. 저희 어르신들도 이제 화장을 당연시하시더군요. 벌초를 하며 자연스레 토론이 벌어졌는데 여러 의견 중에 화장한 유골을 봉분 없이 묻는 납골평장(納骨平葬)이 제 귀에는 아이디어처럼 들렸습니다. 분묘 하나의 공간에 몇 대(代)가 나란히 자리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곧 추석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끼리 모이는 자리에서 여러분도 토론해보시길 바랍니다. 망자의 땅이 산 사람의 땅보다 3배나 넓다는 걸 꼭 기억하시고요.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