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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은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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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은 어느 계층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의 중산층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두터워질 수 있는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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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산층이란

중간소득이 100일 때 50 ~ 150인 층

사회과학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니다. 기준도 여러 가지여서 혼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학자들은 중간계급으로 분류하고, 경제학자들은 중산층이란 용어를 쓴다.

1985년 경제기획원의 중산층 기준은 이렇다. 최저생계비의 2.5배이고, 독채 전세 이상에서 살고, 상근 고용이나 자영업 이상에 종사하고,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 한상진 서울대 교수는 전체가구 연평균 소득의 75%이상인 사람으로 분류했다. 다소 주관적인 기준도 있다. 1987년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는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의식과 이에 필요한 경제력을 구비한 계층이라고 정의했다. 경제적으로는 안정세력, 정치적으로는 비판세력이라고도 했다.

좀 더 구체적인 기준이 나온 것은 2002년. 홍두승 서울대 교수는 중산층의 네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계급적으로 중상계급, 교육수준은 2년제 대학 이상 졸업, 도시가구 월평균 소득의 90% 이상, 주택은 자가 20평 이상 또는 전.월세 30평 이상이 그것이다. 네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가구는 전체의 20.1%에 불과하고, 세 가지 충족은 48.8%로 조사됐다. 홍 교수는 세가지를 충족하는 중산층을 '핵심적 중산층'으로 분류했다. 국제 비교를 할 때는 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을 인용한다. 이 기준은 중위소득의 50~150%에 들어가면 중산층으로 본다. 중위소득이란 한가운데 소득을 의미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04년 가구당 중위소득은 3213만원이며, 이를 기준으로 50~150%는 약 1600만~4800만원이다. 즉 가구 소득이 여기에 해당하면 중산층이라는 얘기다. 이밖에 통계청 소득분위 기준으로는 소득 상위 20%와 하위 40%를 제외한 나머지 계층을 중산층으로 분류한다.

2 얼마나 왜 줄었나

외환위기가 직격탄 … 저소득층 전락

중산층이 줄어드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문제는 우리가 줄어드는 정도가 너무 심하고, 줄어드는 속도도 빠르다는 점이다. 중산층은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줄었다는 게 중론이다. 당시 중산층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사무.기술직 등 화이트칼라에 구조조정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의 70%에 달했지만, 올해 본지의 조사에 따르면 56%로 줄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KDI의 조사에서도 중산층은 96년 67.5%에서 2004년 63.9%로 감소했다. 또 OECD 기준(중위소득의 50~150%)에 따른 중산층은 1997년 64.9%에서 2005년 59.5%로 줄었다. 이 기간 상위층은 1.7%포인트 증가했고, 하위층도 3.7%포인트 늘었다. 중산층은 줄고, 상.하위층은 늘면서 허리가 가는 형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OECD 회원국의 중산층은 평균 71%로 우리보다 두텁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양극화의 정도를 나타내는 양극화지수는 2000~2002년 진정세를 보이다 2003년부터 다시 상승했다. 2004년 0.0665로 미국(0.0883)보다는 낮지만 일본.독일.프랑스보다 높다. 양극화지수는 높을수록 양극화가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소득격차 확대는 통계청의 가계수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해 전국 가구 중 소득 수준 상위 20%인 계층의 월평균 소득은 하위 20% 계층의 7.56배(5분위배율)에 달했다. 이는 2004년 7.35배보다 늘어난 것이다. 학력별 소득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올 상반기 가장이 대학을 졸업한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12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6.5% 증가했다. 고교를 졸업한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93만원으로 4.7% 상승했다. 1년만에 격차가 12만원 늘어난 것이다. 고령화도 중산층 약화의 요인이 되고 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노인의 3분의 1이 빈곤층으로 전락했으며 이혼과 단독가구가 늘면서 여성가구 서넛 중 하나는 빈곤가구"라고 말했다.

3 중산층 복원 왜 중요

사회불안.갈등 막는 완충지대 역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갈등과 반목이 깊어지고 있다. 개인파산이 늘고, 이혼.자살이 증가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중산층의 약화가 사회불안과 정치갈등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고 통합적인 사회로 가려면 중산층을 두텁게해 완충역할을 맡겨야 한다. 중산층이 두텁다는 의미는 경제 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건강하다는 방증이다. 양극화가 분열과 갈등의 문제 인식이라면 중산층은 통합과 수렴의 대안인 셈이다. 양극화 해소는 추가 하락을 막는다는 의미로, 지금의 빈곤층이 장래에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이 없다. 반면 중산층 복원은 중산층에 해당하는 지표를 제시하고 보다 적극적인 정책 수립이 가능해진다. 또 중산층 복원은 중산층이 되기 위해 경쟁과정을 극복하는 역동적 개념으로 사회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중산층 복원이 양극화 해소보다 더 적극적 개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현진 한국사회학회 회장은 "중산층은 세상이 막혀 있을 땐 진보, 너무 빠르게 변할 땐 보수에 서서 사회의 완충 역할을 해왔다"고 중산층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윤상철 한신대 교수는 "중산층은 계층끼리 대립하며 병목현상이 발생할 때 이를 해소해주는 역할을 한다"며 "그런 면에서 중산층은 파국을 막는 안전판"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으로도 중산층이 복원되지 않으면 경제회복이 요원해진다. 중산층이 줄면 세금을 내는 계층이 줄어 재정이 빈곤해지고, 그만큼 빈곤층 구제도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홍두승 서울대 교수는 "중산층 육성은 비중산층을 포함한 전 국민이 중산층이 되기 위한 정책이지, 중산층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지역 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중산층 복원이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초의수 신라대 교수는 "수도권 대 지방, 영남 대 호남 등 지역갈등에 대해 화이트칼라 계층이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해선 화이트칼라를 비롯한 중산층을 두텁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 어떻게 되살리나

일자리 만드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

중산층을 되살리기 위해 성장과 분배 가운데 어느 쪽에 비중을 둬야 하느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복지는 일종의 시혜로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요법"이라며 "빈곤층의 해결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올라가면 양극화지수는 2.3~5.1% 감소한다고 밝혔다. 성장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산층을 복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의 비중은 OECD 회원국 중 꼴찌"(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장), "분배를 통한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는 소비 증가를 초래해 경제성장에도 기여하게 된다"(이인재 한신대 교수) 등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일자리를 늘리는 게 중산층을 복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를 위해 기업이 투자를 늘려야 하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전직.직업교육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올 상반기 재정경제부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도 양극화 해소를 위해 시급히 추진할 과제로 응답자의 54%가 '기업투자 활성화'를 꼽았다.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고용 불안을 덜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평균 근속연수를 보면 한국이 5.6년으로 일본(12.2년).영국(8.1년).미국(6.6년)보다 짧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부터 소득 불안정이 나타난다"며 "고용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 중산층 살리기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소득을 높이는 것보다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더욱 절실할 수 있다는 얘기다.

관광.의료.교육 등 서비스업의 경쟁력 강화와 개방도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이다. 우천식 KDI 연구위원은 "성장 잠재력 확대를 위해 교육.의료 등의 과감한 개방과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산층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교육비를 줄이는 것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사교육비는 2000년 7조여원에서 2003년 13조여원으로 늘었다. 공교육의 질을 높여 사교육을 흡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세 형평성도 높여야 한다. 봉급생활자가 자영업자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나 소득이 올라가면서 세금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은 연구해볼 과제다. 김병관 아주대 교수는 "양극화 문제를 조세정책으로 푸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부동산을 세금으로 규제해 묶을 것이 아니라 양질의 주택 공급을 늘려 부동산을 안정시키는 것과 육아.노후 등에 대한 대책도 중산층 복원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 특별취재팀=고현곤(팀장), 양영유.정철근(사회부문), 나현철.김준술.손해용.임장혁(경제부문), 장정훈(디지털뉴스부문), 변선구.최승식(사진부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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