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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고용 평등법 "있으나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부산북구의 모신발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이모씨(24·여)는 회사노무과에 산부인과 진단서를 첨부, 지난해 8월8일부터 10월7일까지의 산전·산후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회사측은 창사이래 유례가 없을 뿐아니라 다른 여성근로자에게 파급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제출서류일체를 우편으로 반환하고 말았다.
대졸출신인 홍모씨등 3명의 여성은 모협회에 공개경쟁시험을 통해 입사했으나 결혼과 함께 1명은 강제해고, 다른 2명은 조건부 사직서를 제출했다. 두사람은 결혼일로부터 1년후 원직에 복귀시켜준다는 조건으로 사직서를 제출한후 임시직으로 전환, 신규채용 형식으로 1년이상을 근무했으나 복직되지 않았다.
이상은 한국부인회 주최로 11∼12일 창원관광호텔에서 열린 「남녀고용평등법 정착화방안」세미나에서 발표된 고용상 여성차별사례의 일부. 88년4월1일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된 이후 2년이 지났는데도 여성근로자 상당수가 법의 내용을 잘 모를 뿐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부족한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부인회가 서울·부산·대구·광주·인천·춘천·태백·마산·청주·순천·목포지역에 근무하는 여성근로자 2천3백89명을 대상으로한 최근 설문조사에서 남녀고용 평등법을 잘 알고있다는 응답자는 8.7%. 반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이도 15.4%나 됐다.
90년도 신입사원채용에 있어서도 35.4%가 대체로 평등했다고 답하고 있으나 너무 불공평하게 채용되고 있다고 보는 이도 21.6%나 됐다.
승진에 있어서도 남자가 우선적(47.9%)이고, 퇴직때도 여자는 결혼(22.0%)·임신(6.0%)이 원인이되며 퇴직연령자체가 남자보다 낮게 책정(18.8%)되는등 상당수가 차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전·산후 휴가가 없다는 응답자도 19.5%나 됐으며, 출산 휴가를 주는 곳에서도 휴가기간중 정상적인 월급지급은 39.3%에 불과할뿐 일부(28.3%), 또는 전혀 지급되지 않는 경우(10.5%)도 많았다.
응답자들은 직장생활에서 겪는 가장 큰 문제로 경영자의 성적 편견으로 인한 채용·승진의 불평등(28.5%)과 여성은 집에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선입견(24.8%)을 지적, 그러나 업무분담에서 여성은 좀 더 보호를 받아야한다(34.5%)는데서 보여지듯이 여성 스스로 일을 남자와 똑같게 하지 않으려는 의식(23.0%)도 걸림돌이 되고있어 여성자신의 의식변혁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설문조사결과를 발표한 한국부인회 배성심법률상담실장은 『최근 채용공고에서 남녀차별을 한 기업체에 대한 검찰의 약식기소를 정식재판에 회부, 구체적 판례가 성립되도록 해야 할것』이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최일섭교수(서울대·사회복지학)는 기업가들이 내세우고 있는 여성차별요인으로 ▲출산·자녀양육으로 지속적인 직장생활이 어렵고, 결근률이 높으며 ▲유교적 관습등으로 여성승진은 업무상 마찰을 야기한다는 관념등을 꼽았다.
그는 이같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여성 스스로 직장생활은 자기발전과 성취감등을 가져다 준다는 적극적 의식을 갖고 대학 학과 선택에서부터 취업에 대한 열의를 가질 것 ▲기업가는 여성근로자 차별철폐가 기업복지의 중요요소이며 결국 기업이익이 된다는 점을 생각할 것 ▲정부는 저렴한 탁아시설설치등 여성근로자를 위한 지원책을 강구할 것등을 제안했다. <창원=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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