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오디오 선사시대'는 서구도 비슷했다. 에디슨의 유성기 발명은 1877년이지만, 가정용 오디오는 20세기 중반 이후 보편화했다. 그 이전에는 저출력의 진공관 앰프와 이와 궁합이 맞는 문짝만한 스피커들이 한 세트. 이런 권위주의적 풍경은 변강쇠 힘을 자랑하는 고출력 트랜지스터 앰프의 등장(60년대) 이후 크게 바뀐다. 그때 작은 스피커의 원조인 AR 스피커가 출현하면서 비로소 '오디오 민주화'가 펼쳐진다.
어쨌거나 오디오 1백년사의 지금은 개성만발, 백가쟁명의 시대다. 특정 브랜드.모델이나 취향이 대세를 이루기보다는 탈(脫)중심의 기운이 뚜렷하다. 우선 80년대 이후 진공관 앰프가 복권하며 현재는 트랜지스터와 호각지세다. 또 디지털과 아날로그도 공존 중이다. 즉 81년에 등장한 CD는 구닥다리 LP를 왕따시키기는커녕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왜 그런가.
진공관.LP의 사운드가 트랜지스터.CD에 비해 훨씬 인간적이라고 믿는 소신파들을 말릴 장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현대기기.빈티지도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다. 물론 요즘 선호되는 사운드의 추세는 없지 않다.'쭉쭉빵빵한 소리', 즉 오디오 파일들이 말하는 쿨 앤드 클리어(cool & clear)사운드가 그것이다. 하지만 탄노이 스피커 같은 펑퍼짐한 소리(warm & sweet)파도 여전히 적지 않다.
또 하나 흥미로운건 외제.국산의 공존 현상이다. 오디오하면 무조건 외제를 치던 풍조는 예전같지 않다. 물론 현대앰프의 신기원을 이룬 마크 레빈슨에 크렐 등 외제 고가모델들은 여전히 위력적이지만, 하이엔드 국산도 제 목소리를 찾으니 더 없이 반갑다. 다음 회부터 오디오 민주주의의 꽃밭에 뛰어들어 볼 차례다. 하여 그들이 풍기는 기기묘묘한 향기와 자태를 즐겨보자.
조우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