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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아픔 함께한 '현대판 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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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자신이 교수로 재직했던 고려대 교정에 건립되는 조지훈 시인의 시비 조감도. [중앙포토]

◆ 조지훈(1920~68)의 시 세계=시비에 새겨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는 4.19 혁명 보름 뒤인 1960년 5월 3일자 고대신문에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라는 부제와 함께 실렸다. 시인은 시를 통해 혁명 전 혼탁한 정권에서 "현실에 눈 감은 학문"을 하며 숨죽여 살았던 교수 사회의 반성과 혁명에 뛰어든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시비건립위 위원장인 고려대 최동호(국문학) 교수는 "스승이 단순한 지식 전달자로 전락한 요즘 시대에 진정한 사제 관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라고 말했다.

경북 영양에서 태어난 조지훈(본명 동탁)은 "시인이자 문필가.학자.지사로서 항상 민중 편에 서서 민족 전체의 생존을 위해 애쓴 진정한 지성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김소월(1902~34)과 김영랑(1903~50), 유치환(1908~67)과 서정주(1915~2000)를 거쳐 청록파에 이르는 한국 현대시의 주류를 완성함으로써 20세기 우리 시단의 전반기와 후반기를 이어줬다.

시인의 범주를 넘어 시대의 아픔과 일생을 같이한 지사이자 현대판 선비로도 이름이 높았다. 특히 일제의 폭압적 체제나 이승만 정권의 독재 정치, 이어지는 군사정권에도 굴하지 않은 지조로 유명하다. 조 시인은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1939년 '고풍의상'과 '승무'등으로 '문장'지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민족 정서를 우아하고 섬세하게 녹여냈고, 전통적인 운율과 선(禪)의 미학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결합해냈다.

1946년에는 박두진(1916~98).박목월(1916~78)과 함께 시집 '청록집'을 펴냈다. 그가 남긴 '청록집'과 '풀잎단장' '조지훈시선' '역사 앞에서' '여운' 등 시집은 한국 현대시의 보석으로 평가된다. '승무'와 '낙화' 등은 지금도 널리 사랑받는 민족시의 명작들이다.

조 시인은 민속학과 역사학을 아우르는 국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47년부터 고려대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민족문화연구소를 만들어 국학 연구에 정열을 쏟았다. 이런 바탕에서 '한국문화사서설' '한국민족운동사' '멋의 연구' 등 저서를 남겼다. 서울 남산에 그의 시비가 있다.

◆ 조지훈과 청록파=청록파는 1939년 '문장' 추천으로 등단한 조지훈을 포함해 박목월.박두진 세 시인을 일컫는 말이다. 세 사람의 작품 세계는 서로 달랐다. 조지훈은 고전미에 문화적 동질성을 담아 일제에 저항하는 시를 썼다. 박목월은 향토적 서정으로 한국인의 전통적 삶의 의식을 민요풍으로 노래했다. 박두진은 기독교적 신앙의 바탕 위에서 자연에 대한 친화와 사랑을 읊었다. 이들은 그러나 자연을 소재로 자연 속에 인간의 심성을 담은 시를 쓴 공통점이 있었는데, '청록집'을 함께 내며 청록파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청록집'은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해 정치시풍이 주류였던 당시에 자연과 향토적 생명 감각을 구현한 순문학 시집이다. 시집에는 조 시인의 작품 '완화삼''승무' 등 12편 , 박목월의 '윤사월''나그네' 등 15편, 박두진의 '묘지송''설악부' 등 12편을 포함해 모두 39편이 들어 있다. '청록집' 발표 뒤에도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작품 세계를 추구했지만 시의 순수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원한 청록파로 남아 있다.

이태종 NIE 전문기자, 조종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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