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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비폭력만이 분쟁 해결/티베트승왕 달라이라마(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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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유에의 열망 막을길 없다/불교에는 인간의 품성 지키는 방법 내재
북미주사암연합회장 표도철스님(뉴저지성불사주지)이 지난 3월17일 인도 다람살라 티베트승왕청에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티베트승왕 달라이 라마와 2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21세기의 세계에 불교가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국제기구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표스님은 그 준비단계로 세계 불교지도자와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승왕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불교인들이 모여드는 법회기간중인데도 이례적으로 긴 인터뷰에 응했고 부처님 진신사리 일과도 표스님에게 기증했다. 대담내용중 불교관계의 전문적 내용은 제외하고 최근의 동향,세계평화와 종교,동유럽의 변화,세계인권문제등에 대해 정리한다.<편집자주>
­표스님=미국불교도를 대표하여 노벨평화상수상을 축하하며 노벨평화상을 받은 의미를 듣고 싶습니다.
▲달라이 라마=부디 살바,보리아나(위로는 법을 수행하고 아래로는 보살심을 갖는 것)를 가르치는 자비와 비폭력을 수행하는 것이 본분인 승려에게 이 상은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 상은 자비와 비폭력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국제적 인식의 한 결정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 자비와 비폭력의 가치를 알리고 증진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이 수상을 계기로 더 넓은 층의 사람들과 만나 불교의 정신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 티베트인으로서 티베트 자유항쟁을 위한 도음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고 종교는 평화를 추구하고 있으나 분쟁은 그치지 않습니다. 세계평화에 대한 종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저는 다양한 종교들이 세계평화에 각각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평화는 인간의 마음의 평화를 통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의 평화를 갖는 것에 대해 각각의 종교는 특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종교의 이름으로 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종교가 세계평화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종교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을 실망시킵니다.
그것은 참으로 불행하게도 종교가 「단체」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은 성실히 수련을 해야하고 자신들을 질적으로 돌보아야합니다. 질적인 면에서 심각한 고찰이 없을때 종교가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동구,나아가 세계 전역에서 공산주의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의미와 파장은 어떤 것일까요.
▲믿을수 없을만큼 아주 좋은 변화입니다. 이 변화의 전망은 매우 밝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욕망에서 이루어질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아주 올바르고 정의로운 것입니다. 어떠한 힘도 이 욕망과 변화를 막을수 없습니다.
지금 티베트인들은 힘만 믿는 중국친구들과 접하고 있고 한국도 비슷한 상황에 있습니다. 자유의 날이 베이징에 먼저 올까요,평양에 먼저 올까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그러나 두 나라에서 조만간 인간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욕망으로 민주주의가 일어날 것입니다.
­남북한·중국·소련·미국의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잘 모르겠군요. 잠깐만,고르바초프는 위대한 사람이고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많은 긍정적 변화는 그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기대해봐야겠지요(달라이 라마는 티베트문제를 비롯한 정치문제에 조심스런 자세를 보였다).
­현재,그리고 미래의 세계와 종교의 위상에 대해….
▲어려운 문제군요. 저 자신으로 말하자면 얼마나 불교를 전파하고 신도를 늘리느냐에는 관심이 없고 불교의 전통과 성향으로 얼마나 인류에 이바지할 수 있느냐는데 주관심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종교가 갖고 있는 자비·순수·관용·사랑등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적이고 인간의 필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전통에는 이러한 인간의 고귀한 품성들을 지킬수 있는 기술과 방법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인간의 고귀한 성품들의 필수성을 좀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될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평화,세계의 조화·협동,그리고 모든 인간의 활동들이 그같은 고귀한 성품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경제에서 사업가들에게 자비와 친절이 부족하다면 그들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개인적으로,양심적으로 진정한 만족감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적으로 허전함을 느낄 것입니다. 매우 이기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진 사업은 어떤 사회나 나라에서도 때때로 충돌을 야기할 것입니다.
과학기술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인간성이 결여될때 과학과 기술은 더 많은 두려움과 인간성의 파괴를 일으킬 것입니다. 또한 정치가들에게 자비심과 성실성이 결여될때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며 사람들은 정치를 더럽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비·관용·사랑과 같은 고귀한 품성들은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종교는 미래의 인류를 위해 그같은 품성들을 높여나가야 합니다.
­세계 인권문제에 대해….
▲불교신자로서 우리는 생물,특히 모든 인간이 고통없이 행복해지도록 기원합니다. 기원할뿐만 아니라 사람은 무엇인가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권침해에 대해 싸우고 있습니다.
불교신자로 권리에 대한 관심은 인간뿐 아니라 야생동물,심지어는 물고기에 대한 것에까지 미쳐야할 것입니다. 자연·생명의 보호지요. 티베트에 물고기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는 단체가 있다고요? 하,하,하, 잘 모르겠습니다.
­불교방송개국(5월2일)때 내한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아는데요….
▲미리 약속한 이탈리아방문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시간,시간이 참 없어요.<인터뷰=표도철스님>PN JAD
PD 19900401
PG 03
PQ 02
CP HS
CK 05
CS A04
BL 2362
GO 정치와돈
GI 김진국
TI 선거자금(정치와 돈:2)
TX ◎밑빠진독에 쏟아붓는 「눈먼 돈」/우선 달지만 결국 유권자 부담/낙선되면 으례 빚더미위에(주간연재)
선거가 치러지면 통화당국은 통화환수에 골치를 썩는다.
언제나 선거이후엔 「선거 인플레」라는게 따르게 마련이다.
결국 한때 유권자를 즐겁게 한 회식이다,봉투다,선물이다하는 것이 되돌아와 부담을 안기게 된다.
여당의 경제실력자가 나선 대구서갑구 보궐선거는 흥청망청. 1백억원 투하설이 나돌고,심지어 야당측에서는 5백억원 살포설까지 퍼뜨리고 있다.
유세장의 응원부대는 두어시간 고함지르고 두당2만원,유인물 돌리기등 임시 운동원은 하루 15만원이나 줘 선거운동비가 몇갑절 껑충 뛰었다.
물론 한 지역에서만 보궐선거를 할 경우 총선 때와는 비교가 안되게 비용이 드는게 사실. 지난해 영등포을구 재선거때도 1백억원 전후를 풀었다는 소문이 설득력있게 퍼졌었다.
이렇게 선거에 사용되는 자금은 출처도 모호하지만 쓰는 곳도 갈피를 잡기 어렵다.
예를 들어 대구서갑구 보선에서 예식장을 빌려 하루 두번씩 당원교육을 하는데 외부인은 일체 접근할 수가 없다.
이들에게는 3만∼5만원씩의 봉투를 돌린다는 소문만 돌았을 뿐이다.
지난 13대 총선때 민정당후보는 평균5억∼10억원,많게는 30억∼50억원을 쓴 사람도 있다고 알려졌다.
14개동 24만인구의 도시선거구를 가진 한 여당의원은 △기간당원 활동비=1억5천만원 △아르바이트 학생(40명)=8천만원 △선전비=1억5천만원 △후보활동비=2억원 △부인활동비=5천만원 △사무실·차량관리비=2천만원 △인원동원비=1억원등 약 7억∼8억원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도 장부를 정리해놓은 것도 아니고 사후 추산한 기본경비여서 사실 얼마가 들어와 얼마가 나갔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특히 여당후보의 경우 투표일 직전의 「봉투」작전등 금품공세나 선물비가 크게 차지해 실제액수는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
야당의 경우 재력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어서 기준잡기가 곤란하다.
지방대도시의 김모의원은 중앙당의 지원금 1억원정도와 친구·친지의 지원금등 1억2천만원선에서 선거를 치렀다고 밝히고 있고 어떤 의원은 외부에서 보기에도 여당의원보다 많은 금품을 뿌리기도 한다.
대도시의 한 야당의원은 △아르바이트 학생 40명×일당 1만5천원×3개월+숙식비=6천만원 △홍보·선전비=4천만원 △사무실·당간부관리=2천만원 △선전물=3천만원 △운동원=2천만원 △차량유지=2천만원 △후보활동비=3천만원 △부인활동비=1천만원 △인원동원비=2천만원등 2억5천만원선이라고 밝혔다.
이를 2백24개 선거구에 4∼5명이 출마했을 때를 예상해 따지면 최소한 5천억원이란 현금이 살포되는 셈이다.
결국 선거에 임하면 어떤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들어오는대로 쏟아붓는다.
선거자금이란 한도 끝도없어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이어서 조달가능한대로 모조리 동원한다.
이러한 돈을 마련하는데도 여야후보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13대선거에서 여당후보들은 중앙당지원금이 최고 2억원이고 재계지원금이 상당했으며 기타 지역유지들이 수천만원씩 지원했다는 것이 여당이 된 한 야당의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거물급 중진의 경우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자금을 지원,선거를 치르고도 상당히 돈이 남는다고 한다.
중부권의 중량급 이모의원은 선거전 막판에 일부 가까운 후배 의원들에게 남는 자금으로 3백만∼5백만원씩 응급수혈을 해줘 선거뒤까지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의원의 경우는 급한 김에 빚을 끌어다 쓰는 경우가 많아 낙선되면 빚더미에 올라앉고 잠적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13대총선후 야당당사에는 이들의 빚을 갚으라고 30∼50명씩 몰려들어 총재실을 점거,농성하기도 했다.
야당의 경우 전국구를 경매해 모금한 돈이 중앙당 지원금으로 내려간다.
지난 13대의 경우 당선권내 전국구번호는 최소 10억원,많게는 20억∼30억원에 이르렀다.
선거 때가 되면 자금수요가 급증해 야당후보로선 가까운 친척·친구가 아니면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
결국 꼬리가 달린 떳떳치 못한 자금을 어쩔 수 없이 삼키게되는 경우가 많다. 선거때만 되면 통일교자금설등으로 공방이 벌어진다.
대기업이 야당에게 지원하는 자금은 간첩접선식으로 건네지기도 한다. 모 야당의 한 보좌관은 어떤 기업체에서 『당신 차 아닌 친구차를 타고 오라』고 해 갔더니 로비에서 차번호만 묻고는 한참 잡담을 한뒤 가라고 하더라고 했다. 주문대로 30분간 시내를 배회한뒤 트렁크를 열어보니 허름한 가방에 현금이 잔뜩 들어있었다고 했다.
이번 대구보궐선거에서 정호용씨가 가장 고통을 받은 것도 친척이나 자금줄에 대한 세무사찰 위협이었다.
그러나 12대때의 불고기가 13대때는 갈비로 바뀌고,막걸리는 맥주로 바뀌는등 유권자의 입맛이 바뀌고,동원인력의 일당도 점점 높아지고 있어 14대때는 단가가 훨씬 높아질 전망이다.
선거인플레를 방지하고 검은돈을 없애기 위해선 결국 유권자의 의식이 바뀌는 수밖에 없다.<김진국기자>PN JAD
PD 19900401
PG 03
PQ 03
CP HS
CK 04
CS F01
BL 1121
GO 분수대
TI 국립극장 40돌(분수대)
TX 국립극장하면 지금 60대이상된 연극팬들은 서울태평로에 있는 옛 부민관인 세종문화회관별관을 떠올릴 것이고 40대,50대 팬들은 명동에 있던 옛시공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세종문화회관별관은 최근까지 연극공연장으로 쓰여 굳이 60대가 아니더라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번쯤 발길이 닿았을 것이다.
그 세종문화회관별관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극장이 된 것은 1950년초였다. 정부수립 직후 한창 어수선한 시기에 공연예술의 요람인 국립극장을 마련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견스럽기 그지 없다.
최근 연극평론가 유민영교수(단국대예술대학장)가 학문의 대중화를 내세우며 펴낸 『우리시대의 연극운동사』를 보면 흥미있는 대목이 많다.
특히 그 가운데 「국립극장설립 언저리」부분을 보면 국립극장은 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설립이 추진되었으며 그것도 서울만이 아니라 부산과 대구에 동시에 개관한다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문화정책을 입안했었다.
결국 부산과 대구는 실현을 보지 못했으나 국회의사당으로 쓰겠다는 타부처의 압력을 물리치고 구부민관을 국립극장으로 정한 것은 연극계의 성원도 있었지만 독일에서 공부한 문교부장관 안호상박사와 30년대에 연극운동을 했으며 시인이기도 한 당시 이승만대통령비서 김광섭씨의 숨은 공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국립극장은 50년4월29일 정식 개관했다. 개관기념작품은 초대극장장이었던 극작가 유치진씨가 부랴부랴 서둘러 쓴 『원술랑』이었다. 이 작품은 1주일간 공연됐는데 관객이 5만명이나 몰려들었다. 우리 신극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두번째 작품 『뇌우』는 10일간 공연,7만5천명이 관람했다. 당시 40여만명의 서울인구중 6분의1이 연극을 본 것이다. 그래서 전속극단 신협의 배우들은 5만원의 월급을 받았는데 이 액수는 6식구가 두달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돈이었다. 가위 연극의 르네상스시대였다.
그 국립극장이 40돌을 맞아 1일부터 갖가지 기념잔치를 벌이고 있다. 연극,창극,무용,발레,오페라,합창등 모두 32편의 기념공연을 마련했다.
그러나 73년 지금의 장충동으로 옮긴 국립극장은 외형은 대형화됐지만 그 옛날 대중의 사랑을 받던 국립극장은 아니다. 다른 것은 제쳐놓고 우선 교통이 너무 불편하다.
광화문에서 덕수궁까지 메워지던 시절의 국립극장이 새삼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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