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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8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김일성,박헌영에 “갈라서자”/서울선 공산당과 여운형의 인민당이 합당
진주를 중심으로한 서부경남출신의 해방이전 파벌이었던 ML파는 거의 다 김일성 쪽으로 넘어가고 그들보다 10년이상 젊은 나는 원칙적 입장에서 중앙위원회(박헌영)를 지지했다. 마산출신의 김형선ㆍ김명시 남매와 울산출신의 이관술ㆍ이순금 남매가 김일성파와 대결,서울중앙위원회를 지키게 되었다.
평양의 김일성은 최창익을 시켜 서울에 있는 ML파를 평양쪽으로 돌리는 동시에 서울공산당 중앙에 있는 소련출신 및 만주출신들도 포섭했다.
연안에서 돌아온 독립동맹의 한빈을 서울에 독립동맹 지부를 결성한다는 명목으로 파견, 소련출신의 강진과 만주출신의 문갑송ㆍ김권등을 포섭케했다. 이는 서울에 있는 친소파와 친중파와의 제휴로 소ㆍ중의 후광을 받고 있는 김일성으로서는 쉬운 일이었다.
문과 김등은 바로 중국 공산당원이며 30년 5월30일 간도에서 소위 5ㆍ30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극좌모험주의의 중국 공산당중앙 이입삼노선의 신봉자들이었다. 나는 김일성파로 넘어간 사람들을 모두 잘알고 있었다. 이우적소개로 해방일보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자기들파라고 생각하고 있는듯 했다.
나는 그사람들의 생활이 갑자기 윤택해 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즉 평양에서 막대한 자금이 흘러 들어오는 눈치였다.
박헌영은 미군정 및 우익측에서의 공격과 평양의 김일성과 결탁한 당내 파벌분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우선 당내 파벌분자들에게 양보해 당내를 결속해 보려고 했다. 그래서 당중앙인사를 개편하기로 했다. 그들중에서 정치국에 강진,조직국에 김권ㆍ이문홍,서기국에 이정윤ㆍ문갑송ㆍ서중석,중앙선전부에 이우적을 배치할 것을 제의했다.
이에대해 김일성의 배경을 가진 반대파들은 박헌영이 진퇴양난이라는것을 알고 박이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서울의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핵심을 자기들이 차지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의 요구는 △화요회계(1925년이래 박헌영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공산당의 핵심계)를 중심으로 한 박헌영독재의 배제 △종파분자인 이현상ㆍ김삼용ㆍ이주하 등을 당요직에서 축출할 것 △광범위한 인사들을 당요직에 등용하되 특히 김철수ㆍ이우적ㆍ구소현ㆍ이문홍ㆍ문갑송 등을 중용할 것 △전당대회를 속히 개최하여 당중앙을 민주적으로 개편할 것 등이었다.
이러한 요구조건을 다 들어준다면 조선공산당중앙을 평양의 김일성에게 송두리째 갖다바치는 결과가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불온한 움직임이 있는데 6월11일 인천의 거물 조봉암이 김일성에게 호응하고 박헌영노선을 비판하는 것처럼 쓴 편지가 발표됐다. 당중앙은 그러한 당내문제를 CIC를 통해 동아일보에 나도록 한것은 해당행위라하여 그를 제명ㆍ출당 처분했다.
그무렵 나는 해방전에는 지하투쟁으로,해방후에는 불규칙한 생활과 과로로 위궤양에 걸려 병석에 눕게 되었다. 할수없이 고향에 돌아와 치료를 하고 있었다.
7월29일 평양에서 신민당이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에 합당을 제의했다.
김일성은 서울의 박헌영 중앙위원장에게 『조선의 현실상 남북이 가각 다르니 남북의 당이 완전히 갈려 각자가 구체적 현실에 따라 정국을 지도하는 것이 좋으니 남ㆍ북노동당으로 갈라지자』는 양해를 구하며 신민당의 합당제의를 수락했다.
평양의 이같은 움직임에 이어 서울의 인민당 당수 여운형은 공산당의 박헌영에게 합당제의를 했고 8월4일 박헌영이 이를 수락했다.
어느날 나는 시골에서 우편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보니 이정윤ㆍ김철수ㆍ강진ㆍ문갑송ㆍ김권ㆍ서중석 등 6명의 중앙간부가 박헌영중앙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기어이 당내 분쟁이 폭발했구나 싶어 보던 신문을 던지고 곧바로 서울로 가겠다고 일어섰다. 영문을 모르는 어머니가 『그런 몸으로 어디 가느냐』고 붙드는 것도 뿌리치고 진주행 차를 탔다. 8월의 더운 날이었다.
공산당ㆍ인민당ㆍ남조선 신민당 3당합당을 계기로해 박헌영당중앙 지도부에 반기를 공공연히 들고나선 6명의 중앙간부는 김일성과 특별관계인 인민당의 여운형과 남조선 신민당의 백남운과도 연계를 갖고 공동전선을 펴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나는 그쪽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이 많아 그들의 움직임을 잘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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