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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우리 노장 감독은 어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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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고전' 월드시리즈가 한창이다. 야구 팬들은 전통의 뉴욕 양키스와 패기의 플로리다 말린스가 맞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절묘한 화음에 감동을 받는다. 야구로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그 높은 곳에서 가을의 정취와 함께 빚어내는 승부의 진수는 월드시리즈가 왜 '고전(Classic)'으로 불리는지 실감하게 한다.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은 구석이 없고,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대목이 없다. 그 감동과 사연이 주는 교훈 또한 진지하고 진실하다.

야구 팬들은 그 웅장하면서도 품위있는 오케스트라(월드시리즈)의 지휘자가 에너지로 충만한 '20/30'이 아니요, 성숙미가 넘치는 '40/50'도 아니며, 인생의 황혼기에 이른 '60/70'이라는 데 놀란다. 양키스의 조 토레 감독은 1940년생, 예순세살이며 말린스의 잭 매키언 감독은 30년생, 일흔세살이다.

매키언 감독은 손자만 아홉명을 둔 진짜 '할아버지'다. 코니 맥, 케이시 스텡걸에 이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세번째로 나이가 많은 감독이다. 시즌 중반 하위권을 맴돌던 말린스의 지휘봉을 잡아 월드시리즈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열세일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고 승리를 쟁취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와일드카드 경쟁이 그랬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디비전 시리즈가 그랬다. 시카고 컵스와의 챔피언결정전 또한 1승3패의 열세를 딛고 막판 3연승으로 기적의 승리를 연출했다. 정중동(靜中動). 느릿느릿 움직여 상대를 서두르도록 했고, 그렇게 평온한 척 하다가 빈틈이 보인다 싶으면 오히려 반박자 빠르게 상대의 허를 찔렀다.

토레 감독은 참모들과의 화음에서 절정의 조화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줬다. 양키스 더그아웃 오른편. 토레 감독의 양쪽에는 벤치코치 돈 짐머(72)와 투수코치 멜 스토틀마이어(62)가 나란히 앉는다. 이 삼총사의 경륜이 빛을 발한 경기는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7차전. 한마디로 '마지막 승부'에서 외계인으로 불리는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상대할 때였다.

8회초까지 2-5의 열세. 그러나 이들은 단 한순간도 동요하거나 서둘러 승부를 그르치지 않았다. 힘만 믿고 돌진하는 마르티네스라는 황소를 끈질기게 기다리고, 그의 힘을 역이용해 주저앉게 만들었다. 정확한 투수 교체와 대타, 대주자 기용, 그리고 승부의 흐름을 예리하게 읽어내는 순간순간의 판단은 결국 연장 11회말 애런 분의 끝내기 홈런으로 이어져 양키스를 월드시리즈로 이끌었다.

태평양 건너 한국. '가을의 축제'한국시리즈는 '패기의 전성시대'다. 준플레이오프부터 바람을 일으킨 신예 조범현(SK)감독의 능수능란한 지략에 김응룡(삼성)감독이 무릎을 꿇었고 김성한(기아)감독이 무너졌다. 그리고 '여우'로 불리는 김재박(현대)감독마저 뭔가에 홀린 듯한 기색이다.

조범현 감독의 철저한 준비와 용감한 패기, 그 성공에 박수를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축제의 현장을 떠나 있는 노장(老將)들의 쓸쓸한 가을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의 노장들'김영덕(67), 박영길(62), 김성근(61), 백인천(60), 김인식(57), 강병철(57)…, 그들의 '연륜'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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