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오콘, 북핵 악용 군비 확장 구실로 삼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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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DJ.얼굴)은 14일 "남북 정상회담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DJ는 이날 발간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판 창간호와의 인터뷰에서 올 6월 자신의 대북 특사 방문이 무산된 것과 관련, "나는 대통령 자리를 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DJ는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에 내가 남북 관계에서 한 것에서 한 발 더 나가는, 좀 더 진전된 성과를 올려야 다음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남북 관계를 바꾸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 DJ 발언 요지="북한은 대화를 간절히 바라는데 미국의 네오콘(강경파 신보수주의자)은 마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장벽을 치듯 북한을 몰아붙이고 있다. 북핵이나 미사일 문제도 사실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을 가져서 뭘 어찌 하겠나. 미국 앞에 가면 어린애 장난감밖에 안 될 텐데…. 미국은 속으로는 북핵이 겁나지 않으면서 네오콘들이 오히려 그걸 악용하고 있다. 바로 중국 때문이다. 네오콘은 중국을 미래의 가상적으로 생각하고 군비 확장을 하려 하는데 그럼 뭔가 구실이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북한이다. 네오콘들이 북한을 중국 쪽으로 자꾸 밀어넣고 있다. 한.미 동맹 관계는 유지될 것이고, 그렇게 돼야 한다. 그러나 좋은 친구로서 동맹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되는 것은 안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미국에 줄 것 다 주면서 좋은 소리 못 듣고 있다. 이라크에는 영국 다음으로 우리가 (많은 병력을)파병했고, 지금 다 철수하는데도 우리는 그대로 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국내에 찬반이 있지만 정부가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그런 얘기는 놔두고 왜 우리한테 '도움을 잊었다'는 얘기만 하나.…(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관련해선) 미국이 전작권을 넘기든 안 넘기든 한국 방위를 하고 싶지 않으면 나가는 것이고, 한국 방위를 하는 게 자기 나라의 이익이다 하면 안 나가는 거다. 그런데 한국 방위를 하는 게 미국의 이익이다. 미국이 한국에서 완전 철수하면 북한이 중국의 힘을 업고 중국의 힘이 한반도를 넘어서 일본까지 가기 때문이다. 미국에 일본은 태평양지역 방어의 최고 요충지인데 미국이 지켜만 보겠나. 지금 남북 관계는 바른 궤도를 가고 있고 '연합'단계는 언제든지 올 수 있다."

◆ 발언 배경=DJ는 그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해 조심스럽게 발언해 왔다. 하지만 이날 발언은 직설적이었다. 올 6월 방북이 무산된 뒤 DJ는 언론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해 왔다.

DJ는 한반도 주변 4강을 바라보는 속내를 숨김없이 나타냈다. 특히 미국의 대북 강경파를 겨냥했다. "모든 상황의 악화가 (단절된)북.미 관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네오콘들은 한반도 정책에서 손을 떼고 한국의 발언권을 존중하라" "부시 대통령은 말을 했다가도 바꾼다" "미국의 군수산업은 일본에서 팔아먹고, 도처에서 재미를 보고 있다"는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정치권에선 치밀하고 조심성 많은 DJ의 성격으로 봐 노무현 대통령에게 작심하고 훈수를 둔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전반적으로 노 대통령의 '자주'노선에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DJ를 보좌하는 최경환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이 한반도 상황이 매우 어렵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평소 생각을 얘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선 즉각 반론이 나왔다. 박진 의원은 "북핵 위기의 책임은 맹목적인 햇볕정책과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있다는 점에서 김 전 대통령의 진단은 잘못됐다"며 "한국에서 문제를 찾아야지, 네오콘이나 탓할 만큼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정욱.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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