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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으로 만든 카메라 렌즈가 2013년엔 지구를 찍을 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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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내 유일의 대형 비구면 반사거울 제작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광학가공담당 이재협(42)씨. 그는 고교 졸업 뒤 삼양광학㈜과 이 연구원에서 20년간 천체망원경용 대형 비구면 반사거울을 비롯한 카메라용 렌즈를 직접 제작하는 일을 해왔다. 비구면 반사거울은 위성에서 맨 처음 지상의 영상이 거울처럼 비치는 곳이다. 거울이 거칠거나 곡면이 정밀하게 다듬어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지상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지름 40㎝ 이상의 커다란 비구면 반사거울은 중요 군사 품목으로 분류돼 미국.일본 등 기술 선진국들이 낱개로 팔지도 않는다. 7월 발사한 아리랑 2호 위성용도 이스라엘이 만든 것이다.

그런 이씨의 주가가 최근 상한가를 치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상 촬영용 위성의 독자 개발을 본격화하고, 앞으로도 고해상도 아리랑 위성 시리즈를 계속 발사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위성을 독자 개발할 때 이씨의 손이 없으면 위성 디지털 카메라 개발의 결정적인 단계를 넘어갈 수 없다. 위성 전문가들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람들이 그의 손을 '국보급'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우둘두툴한 거울용 재료가 그의 손이 닿아야만 매끈한 오목 반사거울로 다듬어진다. 거울 재료를 다듬어 광 내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되묻는 사람에게 그가 해주는 말이 있다.

"지름 90㎝ 원형 재료의 곡면 표면 중 가장 많이 튀어나온 부분과 가장 많이 주저앉은 부분의 차이가 성인 머리카락 굵기의 4000분의 1 정도밖에 나지 않도록 손으로 고르게 갈아낸다는 것은 20년 경력인 나 역시 어렵다."

그러나 그는 해내고 있다. 지름 90㎝짜리 원판을 갈아 완성하는 데는 6개월 정도 걸린다. 반사거울 설계 전문가가 만든 설계도에 맞게 밑바닥이 밤톨만 한 것부터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연마기를 손으로 끊임없이 돌려가며 맨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표면을 고르게 연마한다. 그 작업은 아주 고운 사포로 표면을 문지르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원판 위에 주황색 연마액을 뿌려 간 뒤 표면을 측정해 더 갈아내야 할 곳을 찾아 그 부분을 갈아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그렇게 완성된 반사거울은 거울처럼 잘 비치도록 알루미늄 코팅을 한다. 연구원 작업실과 클린룸에는 그가 만든 '작품'들이 연구용으로 수없이 비치돼 있다.

대구경 연마는 2000년부터 했다. 그 이전에는 수요도,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소형을 제외한 그가 만든 대형 반사거울은 20개 가까이 된다. 원판 재료 한 개는 5000만~1억원. 이를 위성용으로 가공해 놓으면 몇 십억원짜리가 된다. 이씨는 거울 표면을 연마하면서 "성질 죽이는 것을 배운다"고 했다. 잘 안 갈린다고 직선으로 밀어 버리면 십중팔구는 망쳐버린다. 몇 달이고 연마기를 살살 돌리면서 원자 한층한층을 갈아낸다는 심정으로 작업해야한다는 것.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자동으로 반사거울 재료의 표면을 갈아내기 위해 컴퓨터를 장착한 기계를 개발했었다. 그러나 이씨의 손을 따라 가지 못했다. 앞으로 더 정밀한 기계를 개발할 예정이지만 마지막 마무리 연마는 이씨 손의 몫이라는 게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호순 박사의 말이다.

이씨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우주광학연구단(단장 이윤우)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공동으로 설계하게 될 지름 80㎝의 위성용 비구면 반사거울 제작에 도전하고 있다. 그동안 천문대 등 지상용 비구면 반사거울을 제작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위성용에 쏟아보겠다는 것이다. 그의 꿈은 자신이 만든 비구면 반사거울을 장착한 위성 디지털 카메라가 2013년께 우주를 돌게 될 아리랑 위성 시리즈에 벌써 장착돼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비구면 반사거울=거울이 오목하긴 하지만 원형이 아니다. 타원에 가깝다. 거울면에 반사되는 영상의 초점을 잘 맞추기 위해서 비구면으로 만든다. 위성 디지털 카메라의 렌즈 계통은 대형.소형 비구면 반사거울과 빛이 통과하는 렌즈를 조합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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