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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민주화바람」 왕정체제 흔들/30년 정치적갈등 경제위기로 폭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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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서 경제봉쇄로 사태 악화/지난1월 의회파 시발로 개혁요구 시위 확산/국왕,다당제 도입등 거부 현체제 고수 선언
히말라야기슭 네팔의 왕정체제가 경제파탄과 민주화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네팔은 지난 60년이후 모든 정당활동이 금지된채 전통적인 촌락회의 형태인 판차야트제도에 기초,국왕이 절대적인 군주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지난 1월 불법 재야단체인 네팔의회파(NCP)가 전국규모의 대회를 열고 ▲사회ㆍ경제문제해결 ▲판차야트해체등 7개항을 요구함으로써 정치적 소요가 일기시작했다. 네팔의회파는 지난달 18일 카트만두시에서 11년만의 첫 대규모반정부시위를 계획했다. 네팔정부는 이에 대해 5백여 반정부인사를 예비검거하는 한편 1만5천명 시위군중에게 발표,시위대 11명이 숨졌다.
정부의 무자비한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학생ㆍ교수들의 시위ㆍ체포가 잇따르고 정부비판신문들이 폐간되는 가운데 의사ㆍ변호사협회까지 가세,다음달 1일 총파업키로하는 등 반왕정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네팔의회파와 7개 공산주의 노선정당들은 처음으로 공동투쟁키로 합의,네팔사태는 비렌드라국왕과 재야ㆍ지식인연합간의 대결양상을 띠고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30년간의 해묵은 정치적 갈등이 경제위기를 맞아 폭발한 것.
지난 51년 현 비렌드라 국왕의 할아버지 트리부반국왕이 인도ㆍ네팔의회파의 도움으로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했다.
59년 헌법이 제정되고 네팔의회파주도내각이 구성됐으나 왕권약화와 급진적인 정책에 불만을 품은 트리부반의 아들 마헨드라국왕(55년즉위)이 「친왕」쿠데타로 왕권을 강화하고 판차야트를 기반으로 한 무정당왕정체제를 구축했다.
이후 마헨드라국왕을 계승한 비렌드라 국왕 역시 다당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네팔의회파와 대립을 계속했다. 비렌드라국왕은 의회파의 계속된 압력에 굴복,지난 80년 판차야트존속 결정국민투표를 실시,겨우 55%지지를 얻어 승리했다.
비렌드라왕정은 지난 85년 카트만두시의 반정부폭탄테러사건 이후 공안정국을 강화,87∼88년 정부관료 1백60명을 해임하고 반정부인사 1백여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는 이전에 비해 국민의 참여가 늘어나는등 「밑으로 확산」되는 경향을 보여 주목된다.
네팔은 국민의 90%가 힌두교도로 문맹률이 높고 정치적 관심이 낮았으며 국왕을 힌두교 비누신으로 생각,왕정체제를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파탄에 이른 경제와 동구등 전세계를 휩쓴 민주화 바람의 자극을 받아 국민들의 정치적 자각이 일어나고 왕권에 대한 생각도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도와의 정치ㆍ경제적 갈등은 네팔경제를 파탄직전으로 몰아넣어 정부를 더욱 궁지로 몰고있다.
인도는 전통적인 종속국이었던 네팔이 지난 88년 인도와 국경문제로 갈등관계에 있는 중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는등 친중자세를 보이자 대네팔 제재조치를 가했다.
인도는 인도­네팔 국경로를 봉쇄한데 이어 지난해 3월 시효가 끝난「무역 및 통행에 관한 협정」의 경신을 거부하는등 경제적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히말라야산맥의 오지 내륙국가로 인도의 캘커타항을 유일한 대외무역창구로 이용해온 네팔은 캘커타로 이어지는 도로 봉쇄로 수출입 업무가 거의 마비되고 식량ㆍ연료부족난까지 겹치고 있다.
네팔은 올들어 물가가 25%나 뛰어올랐으며 매년 5.7%의 성장을 보이던 국민총생산도 지난해엔 2%수준으로 하락했다.
1인당 국민소득 1백60달러로 세계최빈국인 네팔은 관광과 대인도 곡물수출,인도거주 4백만 네팔인의 송금이 주요 수입원이었으나 인도의 국경선 봉쇄이후 경제가 파탄직전에 이르게 됐다.
이에 따라 실업률도 급증했으며,일자를 찾지못한 젊은이들이 이번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비렌드라국왕은 『동구변혁이 네팔에서도 일어난다고 보는것은 우스운 일』이라며 현체제를 고집하고 있어 네팔사태는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오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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