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강하면 부러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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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예선 결승 하이라이트>
○ . 왕위후이 7단 ● . 윤 준 상 4단

신예들은 대체로 사납다. 특기와도 같은 사나움으로 선배들의 노련함을 제압하고자 한다. '부드러움이 강(剛)함을 이긴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건만 좀체 부드러워지기 어렵다.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세계는 조금만 약세를 보여도 적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강(强)해지기도 전에 사라진다. 그러므로 사납고 또 사납게 움직여 무적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여긴다.

장면도(149~158)=초반에 우상귀를 잡고 흑은 우세해졌다. 이제 슬슬 두어 이기는 게 옳건만 윤준상 4단은 피 맛을 본 맹수처럼 좌상마저 잡으려 들었다(좌상 백은 현재 두 집이 없다). 순간 괴로움에 신음하던 왕위후이(王煜輝)는 백?로 반격하며 자신에게도 기회가 오고 있음을 느낀다. 어차피 불리한데 좌상이 또 죽은들 대수랴.

게다가 윤준상은 한국의 거친(?) 신예답게 151로 젖혀 전면전으로 나오고 있다. 152로 뚝 끊으며 왕위후이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런 대전투가 시작되면 기존의 유불리는 허깨비에 불과한 것. 이 일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될 뿐이니 불리한 백에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흑에는 '참고도'처럼 두어 좌변을 살아두는 길이 있었다. 이 흑이 살면 귀의 백은 저절로 죽는다. 그러나 윤준상은 흑?들이 크게 엷어져 생사에 얽혀드는 게 싫었다. 무엇보다 그는 151부터 중앙 백과 수상전을 벌여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나 156으로 젖히자 흑의 수가 푹 줄어든 느낌이다. 귀의 백은 이제 A로 두면 산다. 너무 강하게 움직인 흑이 결국 부러지고 마는 것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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