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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1세대, 노예같은 삶은 아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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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백년 전 하와이로 이민 간 한인들의 직업.결혼.교육.종교 등 일상 생활사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하와이 이민 100년,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중앙M&B)가 최근 출간됐다.

'이민의 나라'미국엔 수많은 민족과 국가의 이민사가 있지만, 한국인의 이민 생활사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우선 의미가 있는 책이다. 미국 이민 자료국, 일본 외무성, 미국 감리교협회 등에서 발굴한 문서를 토대로 했기에 자료 가치도 크다.

저자 이덕희씨는 하와이 이민을 다룬 기존 책들의 세부적 오류도 바로잡았다. 일례로 조정래씨의 유명한 소설 '아리랑'의 일부 묘사에 대한 지적이 눈길을 끈다. 소설의 서술과 달리 하와이엔 갈매기가 없다.

또 1903년 첫 이민자가 도착할 땐 트럭도 없었으며, 사탕수수 농장의 십장인 '루나'는 농장의 매점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루나들이 위엄을 부리느라고 채찍을 들고 다니긴 했지만 채찍질을 하지는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1898년 하와이가 미국의 영토가 되고 1900년부터 미국법이 적용되면서 연방정부는 채찍질을 불법화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하와이 이민자들이 노예같은 생활을 했으리라는 추측을 교정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 책이 토대로 한 주목할 만한 자료로는 먼저 1903~1905년 첫 이민자 7천3백명의 명단을 들 수 있다. 미주 한인 역사 정립의 기초가 되는 이 자료는 이씨가 발굴해 '이민 1백주년 기념사업회' 홈페이지(http//www.koreancentennial.org)에 올려 화제가 된 바 있다. '첫 이민자의 대부분이 젊은 총각'이었다는 기존의 추측이 이 명단을 통해 수정되었다. 총각과 홀아비가 전체의 54%를 차지하고, 33%는 결혼하고 혼자 온 경우로 밝혀진 것이다.

또 1905년 중단됐다가 1910~24년 재개된 이민자의 명단을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찾아내기도 했다. 이는 첫 이민자 가운데 결혼을 안했던 사람들이 조국의 한인을 배우자로 초청하기 위해 당시 일본 영사관에 신청한 명단으로, 이민자 이름을 한자로 알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다.

이를 통해 1910~24년 사이 새 신부들만 온 것이 아니라, 첫 이민 온 남자들이 본국에 두고 왔던 부인.자녀.부모들도 데려왔음을 알게 됐다.

이밖에 이씨는 1911년 안중근 의사를 후원했던 미주 한인들의 명단과 기부 금액 문서, 그리고 1904년 하와이 한인 감리교인 4백명의 명단 등을 발굴하기도 했다. 4백명 중 1백8명은 한국에서 세례를 받고 이민 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유영익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는 "종래의 이민사에서 볼 수 없었던 정보를 제시하고 있어 학문적 가치도 높다"고 평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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