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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수교 시간문제/김영삼­고르바초프 전격회담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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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반도 정세변화에 전기마련/비수교국 지도자 만난건 뜻밖
21일 오후(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요청으로 이뤄진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간의 전격회담은 한소 양국간에 국교가 없는 상황아래 이뤄졌다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인데다 한소 양국간 연내수교의 전망을 확실히 해준 것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비록 양측이 회담사실 자체를 발표치 않기로 하는 「비공식」 「비공개」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이번 김최고위원의 방소가 소련측의 공식적인 요청이었던 점,더구나 소련의 최고실력자가 비수교국 집권당의 최고위원을 직접 면담했다는 점은 그간 전망되어온 한소 연내수교의 시기가 상당히 앞당겨지고 그 관계개선의 내용도 매우 구체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반도 정세변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는 2차대전후 한반도 역사의 미ㆍ소 양대국의 대결적인 냉전이데올로기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해왔음을 감안한다면 이같은 변화는 한반도에서 냉전이데올로기의 원초적인 부담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상황전환으로 볼 수 있다.
이날 고르바초프와 김최고위원 회담내용에 대해 양측은 모두 함구하고 있으나 회담의 중심내용이 한소 국교수립문제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날 회담에서는 한소 국교수립의 시기,여건조성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교수립시기와 관련,양측은 각각 고려해야만 할 상황,즉 북한측의 반응이나 국교수립을 위한 분위기조성용 한소 경제협력문제등에 대해 정치적인 결단이란 돌파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최고위원이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면담 몇시간전에 고르바초프의 분신격인 야코블레프 국제담당정치국원과의 대화내용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김영삼­야코블레프회담에서 야코블레프정치국원은 『한소간 수교에 관해 정치국내에 양론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기본적으로 양국간에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은 없다』고 확인함으로써 한소수교의 방침을 공식표명했다.
그는 『남은 문제는 관계정상화의 시기선택과 몇가지 장애물의 극복』이라고 북한에 대한 설득부분에 의문부호를 찍기는 했으나 『한소수교는 동전던지기와 같은 것으로 동전이 떨어지고 난 후 그 앞뒷면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현명하게 판단하느냐』라고 정치적 결단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결심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했다.
그의 이같은 의지표명은 불과 수시간후 그가 김영삼최고위원의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을 주선함으로써 결단을 신속히 가시화시켰다.
이같이 양국 정상들간의 의사전달이 이루어짐으로써 한소간의 관계개선은 기정사실화됐으며 이번 김영삼최고위원의 방소로 그 시기가 상당히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측은 이번 김최고위원의 방소기간중 자신들의 최대관심사인 양측의 경제협력문제에 대해 김최고위원과 동행한 경제인들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들었으며 현재의 상황에 대해 납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따라서 경협문제는 장애물의 성격이 아니라 발전적 디딤돌의 성격으로 규정하기로 양해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소련측은 북한과의 관계와 관련,최소한 김최고위원이 소련을 떠난 후 고르바초프와 김최고위원과의 비밀회담 사실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북한이 더이상 소련의 대한접근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크렘린측 전화받고 붉은 광장 관광 취소/김영삼씨 방소 이모저모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단독회담은 당초 김최고위원의 방소기간 후반에 이루어지도록 잠정합의되어 있었으나 21일 오후(현지시간) 크렘린측의 전화요청으로 15분만에 전격적으로 성사.
김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붉은 광장 관광을 취소하고 숙소인 옥자브라스카야 영빈관에서 일정에 없던 소련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와의 회견을 1시간정도 가진 뒤 오후 6시10분쯤 크렘린측으로부터 『6시25분까지 와달라』는 전화연락을 받고 이를 쾌히 승낙.
김최고위원은 6시22분쯤 방을 나서 영빈관 로비에서 대기중이던 한국사진기자 2명과 통역관인 유학구씨를 대동하고 리무진 승용차편으로 출발,최고위원의 비서로부터 『중대한 일정이 생겼다』는 귀띔을 받은 사진기자들이 로비에서 『누구를 만나러 가느냐』고 묻자 김최고위원은 『나도 갑자기 생긴 일이라서…』라며 즉답을 회피.
그러나 김최고위원은 승차직전 『이제 크렘린에 가면 처음에 한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 만나는 사람이 주요인사』라고 말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만나러 갈 것임을 시사.
○…김최고위원은 오후 7시15분 회담장을 나와 25분쯤 숙소인 영빈관으로 돌아왔으나 흡족한 듯한 표정만 지을 뿐 함구로 일관.
김최고위원은 『누구를 만나고 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전혀 대답을 않고 『오늘 1분도 쉬지못해 몹시 피곤하다』는 말만 되뇌면서 상기된 표정에 성취감이 가득.
이날 만찬은 브루텐스 공산당중앙위국제부 부부장 초청으로 7시에 계획되어 있었으나 김최고위원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비밀회담으로 인해 1시간 연기,김최고위원은 자신의 방인 1206호실에서 30분간 휴식을 취한 뒤 만찬에 참석.
황병태의원은 잠시후 나타나 『소련사람들은 항상 일을 급작스럽게 한다』면서 『원래 월요일(26일)로 얘기됐었는데…』라고 언급,자신이 막후교섭을 담당했음을 시사.〈모스크바=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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