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아카데미 1년, 고양 수련관 가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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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청소년수련원에서 방과 후 아카데미 바둑교실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선생님의 묘수풀이 질문에 손을 들고 있다. 김형수 기자

경기도 S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김우석(11.가명)군. 지난해까진 수업시간 중 갑자기 바닥에 드러눕는 등 매우 산만한 아이였다. 소리를 지르거나 책을 찢는 돌출행동도 잦았다. "생활이 빠듯해 늘 밤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돌봐주지 못했다. 주변의 관심을 끌기 위해 튀는 행동을 했던 것 같다"는 게 어머니 조영경(40.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씨 설명이다.

고민하던 조씨는 지난해 9월 담임교사의 소개로 고양시 청소년수련관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아카데미'를 찾았다. 학교가 끝나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오후 8시까지 저녁도 챙겨주고 공부도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올 들어 조씨는 "아이가 달라졌다"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양수경 교사는 "처음엔 산만하고 공격적이던 우석이가 이제 수업시간에 비교적 차분히 앉아 있고 발표나 체육활동에 앞장서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환경의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는 우석이도 환한 표정이었다.

할 일 없던 토요일에 참가하는 검도.풍물 등 특별활동과 농장.민속촌으로 떠나는 체험학습은 우석이가 아카데미에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공부라곤 하지 않던 우석이가 지난달엔 "아카데미에서 한자 시험 본다"며 스스로 한자 공부를 해 놀랐다고 조씨는 전했다.

◆ 모범생 변신, 편식 사라져=고양시 청소년수련관에는 우석이처럼 가정형편 때문에 돌봐줄 사람이 없거나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또래 친구 42명이 다니고 있다.

이경철(초등5.가명)군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한다. "예전엔 숙제도 안 하고 수업 태도가 불량했어요. 그런데 여기 다니면서 모범생이 되고 있어요." 부모 없이 할머니와 함께 사는 경철이는 성적이 반에서 거의 꼴등(30점)인 데다 욕도 많이 하는 자칭 '불량 학생'이었다.

하지만 방과 후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변했다. "아카데미 선생님한테 한번 질문을 했는데 대답을 아주 잘해주셔서 이해가 쏙쏙 되는 거예요. 그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됐죠." 1년 만에 성적이 68점(반에서 25등)으로 껑충 뛴 경철이는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됐다.

대형할인점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어머니와 사는 박지호(초등4.가명)군도 아카데미에서 희망을 찾았다. "아카데미에서 바둑을 배우고 나서 이창호 같은 바둑기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늘 혼자 밥을 먹어 야채는 입에 대지도 않을 정도로 심했던 편식 습관도 사라졌다. 아카데미 이미정 교사는 "지호는 원래 내성적이었는데 여기 다니면서 발표에 적극적이고 성격도 활달해졌다"고 말했다.

◆ 방과 후 아카데미는=부모의 맞벌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방과 후 홀로 지내야 하는 학생을 돌봐주는 무료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9월 시작됐다. 평일엔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을 가르치고 저녁식사를 준다. 청소년지도사 자격증 등을 가진 전문강사들이 지도를 맡는다.

현재 청소년수련관과 문화의집 등 전국 100곳에서 운영 중이며 초등4~중2 학생 4200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예산을 절반씩 지원하고 운영은 지자체가 맡는다. 참가하려면 시설에 기초생활수급권자 또는 차상위.차차상위 계층 확인서, 부모의 일시적 파산.실직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한애란 기자<aeyani@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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