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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오심이죠" 란 해설 듣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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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90년 앨런 모일 감독이 만든 영화 '볼륨을 높여라'에서 주인공 해리는 거침없는 말을 토해내는 해적방송의 진행자다. 그는 '하드 해리'라는 이름으로 학교의 비리를 폭로하고,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결국 경찰에 잡혀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Talk Hard! (의역하면 '거침없이 말하라' 정도)"라고 여운을 남긴다.

7월 2일 대전구장에서 김동수(현대)와 안영명(한화)의 빈볼 시비가 일어났을 때,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가 김용수씨가 구설에 올랐다. 그는 당시 "저건 고의성이 있는 빈볼이다. 저러면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전까지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해설자 대부분이 '운영의 묘'를 발휘, "손에서 빠진 것으로 보이는데요"라든가, "당사자들만이 알겠죠"라고 넘어가던 것과는 달랐다.

그 말이 전파를 타자 난리가 났다.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안영명의 마음을 어떻게 알고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일부는 직설적으로 단호하게 지적한 해설이 명쾌하다고 좋아했지만 방송사는 비난의 대상이 된 김용수씨에게 10일간 해설을 맡기지 않는 것으로 입장을 대변했다. 구설에 오른 해설가는 부담스럽다는 의미였다.

빈볼과는 다르지만 심판의 오심에 대해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근에는 첨단 장비의 개발과 다양한 카메라 테크닉으로 중계화면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그래서 판정의 오류가 카메라에 잡히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오류가 많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저건 틀린 판정이다"라고 똑 부러지게 지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느린 화면은 계속해서 판정이 잘못됐음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가까이 있는 심판이 잘 봤겠죠"라든가, "정말 아슬아슬하네요"라고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

11일 서울 모처에 야구 중계 아나운서와 해설가들이 모였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그 자리에서 '모호한 상황'에 대해 좀 더 명쾌하게 지적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

백번 옳다고 본다. 잘못을 감추고 덮고 가는 분위기를 만들어 갈 것이 아니라 거리낌 없이 지적하고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사회가 바로 서고 정의가 산다.

PS:국내 심판의 처우는 25년 프로야구 발전의 과정에서 제외돼 있는 것 같다. 20년 넘게 일해 연봉이 가장 많은 심판이 6000만원 정도다. 그들은 자유직업 소득자로 분류돼 자녀를 위한 학자금 지원이나 복지정책의 지원이 없다. 심판의 수준을 높이려면 수준 높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잘못이 있을 때 분명하게 지적하는 게 옳다고 본다. 신상필벌.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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