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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딜' 합병 효과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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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국내 금융업계의 기업 인수합병(M&A)이 한국업체끼리만 서로 주고받는, 이른바 '김치딜(Kimch Deal)'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외 금융사나 투자자본이 국내 M&A 시장에서 따돌림받는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의혹에 대한 수사 등으로 외국 자본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크레디트 위크' 8월호에서 이같이 밝히고 "특히 노사분규 탓에 한국 금융회사들의 M&A에 위험 요소가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M&A에 의존하는 한국 금융산업'이라는 제목의 이번 보고서는 S&P 도쿄사무소가 특별 리포트 형식으로 작성했다.

S&P는 보고서에서 "은행권에 집중되는 한국의 M&A는 국수주의 정서와 이른바 투기성 '벌처펀드(Vulture funds)'에 대한 반감 때문에 주로 한국 업체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특히 대규모 M&A가 한국 업체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국내 금융사 간 M&A가 활발한 데 대해 S&P는 "신규고객 유치를 통한 성장보다는 합병 등 덩치 키우기식 성장을 더욱 매력적 대안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진 탓"이라고 풀이했다.

S&P는 특히 한국 정부도 점점 커지고 있는 외국 자본에 대한 경계감 때문에 새로 민영화되는 금융기관을 국내 업체가 인수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금융사 간 원활한 통폐합을 위해 한국 정부가 규제를 풀고 있지만 이는 필요할 경우 은행의 부실 기업 지원을 바라는 (한국 정부의) 의중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최근 몇 년간 한국 정부는 하이닉스반도체.LG카드 등의 지원에 국내 은행들이 나서도록 독려한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S&P는 그러나 국내 금융사들이 주도하는 M&A가 노사 갈등으로 큰 리스크를 부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 은행 간 M&A가 시스템 통합뿐 아니라 노사분규에 취약한 데다 인력 감축마저 쉽지 않아 대규모 비용 절감 등 합병에 따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실직을 우려한 노조원들이 합병 반대에 나서는 경우가 잦으며, 심지어 합병 은행이 합병 전 각 은행을 대표한 복수의 노조와 협상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S&P의 크레디트 위크는 다국적 금융회사.투자기관과 주요 애널리스트, 각국 정부 및 금융 전문가에게 배포돼 투자 참고자료 등으로 활용된다.

이와 관련, 한 미국계 M&A 전문가는 "해외 금융사와 자본에 대한 배타적.적대적 분위기가 지속될 경우 '동북아 허브' 전략에도 적잖은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M&A를 많이 취급하는 변호사들에 따르면 론스타 사태가 불거진 뒤 홍콩 등에서 한국 지역 M&A를 전담해 온 해외 금융사들이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국 등 다른 곳으로 관심 지역을 바꾸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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