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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절박한 시국 절절히 와 닿는 절묘한 외교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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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세상을 건지고 백성을 구한다' 김춘추의 눈가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혀 있었다. 김춘추를 태운 어가는 서둘러 서라벌의 월성을 향했다. 물결쳐 흔들리는 작은 배처럼 어가는 흔들리며 서서히 움직였다. 쏟아지는 6월의 햇빛이 흔들리는 어가 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 긴 여운이 남는, 소설다운 마무리다. 그런데 책은 끝나지 않았다. '글을 마치며'란 작가의 말은 그렇다쳐도 '찾아보기'가 붙었다. 그제서야 '아, 이건 팩션(faction)이지'하는 자각이 든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춘추가 고구려.왜.당을 오가며 펼치는 절박하고도 절묘한 외교 행적을 뒤좇은 이 작품은 그만큼 흡인력이 있다.

으뜸 요인은 빼어난 글솜씨다. 짧은 호흡으로 이어진 글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면서 서정성도 뛰어나다. 김춘추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의 글로 보기 힘들 정도다.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판에는 마른 바람이 불고 있었다… 비스듬한 산허리를 끼고 점점이 흩어진 민가 사이로 전쟁이란 재앙을 뒤집어쓰고 태어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김춘추가 지원병을 청하려 고구려로 떠나가는 장면이다.

품격도 있다. "역경(易經)에도 모든 사물의 근본은 같으나 모든 사고는 같지 않으며, 그 목적은 같아도 그것에 도달하는 길은 다르다 했습니다. 굳이 백제에만 집착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왜(倭)에 간 김춘추가 실권자를 설득하는 말인데, 당대에도 그리 쓰였을 법한 인상을 준다.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한다는, 팩션의 기본 덕목에도 충실하다. "(서라벌의) 월성은…왕이 머문 곳이라 하여 때로는 재성(在城)이라 했다. 파사왕 22년(101) 이래 5백년 가까운 세월 동안 왕궁으로 사용된 성으로서 대략의 둘레만 1023보에 이르렀다." 여느 소설 같으면 등장하지 않을 대목이다. 여기에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물론 송서(宋書).구당서(舊唐書).일본서기 등 각종 사료(史料)를 버무려 등장 인물과 배경에 신뢰를 더한다. 이 덕에 국제감각을 길러주기 위해 외국 유학생들과 교유를 터주고, 여론을 거스르며 황룡사 탑을 짓는 일을 맡는 등 아들의 정치적 바탕을 닦아주는 김춘추의 생부 김용춘, 남편 김품석과 함께 대야성 전투에서 살해돼 삼국통일의 밑거름이 되는 김춘추의 딸 고타소(古陀炤), 당에서 귀국하던 중 고구려 수군에 쫓기던 김춘추를 대신해 죽은 온군해 등 역사의 갈피에 숨은 인물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한 지은이의 새로운 해석도 눈길을 끈다. 김유신이 휘하의 낭도 백석과 함께 고구려 정탐길에 올랐던 이야기도 기존의 고구려 첩자설 대신 서라벌 귀족과의 갈등으로 해석하거나 김춘추의 고구려 행이 당(唐)에 대한 외교적 시위 성격을 담았다는 풀이가 그렇다. 그러나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지은이의 탁견이다.

"알천의 중립적인 태도야 말로 그를 권력의 테두리에 붙어 있도록 만들어준 이유이면서 정국을 주도한 인물은 되지 못하게 한 이유가 되었다.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알천의 유연한 태도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군부의 신망이 두터웠고, 진덕여왕 사후 김춘추와 더불어 후계자 물망에 올랐던 알천의 사람됨을 논한 구절이다.

"5000여 명에 이르는 (백제)군인들은 모두 화살과 칼을 맞고 처참하게 죽었으되 애국과 국사를 논하던 정객들은 털끝하나 다치지 않은 채 모두 몸을 보전하여 투항했다." 황산벌 전투가 끝난 후의 전황보고인데 이 시대 정치인을 향한 통렬한 야유로 읽힌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반쪽 짜리 통일'로 아쉬워하는 의견도 분명히 일리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면 '그래도…'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넘버 투 맨으로서 목숨을 걸고 고구려.왜.당을 오간 김춘추가 고구려나 백제엔 없었다. 전장에서 순국한 사위 김흠운, 어린 나이에 당에서 활동한 아들들, 병권을 쥔 김유신을 포용하기 위해 젊은 나이에 노장(老將)과 혼인한 셋째 딸 지소 등 그를 뒷받침한 일가의 희생은 더더욱 없었다. 의자왕의 아들 41명이 각 지방을 말아먹은 백제와는 선명히 대비된다. 한반도 변방에 자리잡은 신라가, 문물이 앞서고 국력이 강한 고구려와 백제를 통일할 수 있었던 힘이 아닐까.

김춘추에 반한 학자의 일방적 시각이라 쳐도 재미와 깊이를 아울러 갖춘 탁월한 팩션이다. 21세기 한국인들에게 지침서 구실도 할 만한.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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