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찬반 갈등 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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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부의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을 둘러싸고 시민과 사회단체 사이에 지지.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보수와 진보진영이 상반된 입장을 천명한 가운데 이번 주말께 파병결정 지지 및 철회요구 집회를 열 계획이어서 파장이 이어질 전망이다.

파병반대 운동을 벌여온 진보단체들은 18일 정부의 파병 결정이 나오자 "뒤통수를 맞았다"며 흥분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시민단체 대표들과 만나 "파병문제에 대해 정부 내에서 진지한 논의는 없었다"며 결정이 늦춰질 것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민주노총.민중연대 등 3백5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은 1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대통령의 국정수행이 국민의 저항과 불신에 직면하더라도 그 책임은 믿을 수 없는 지도자 노무현 자신에게 있다"고 선언했다.

비상국민행동은 "파병 결정은 국내적으론 국민 신뢰에 대한 배신이며, 이라크 국민에 대한 노골적인 침략선언이고, 국제적으론 미국에 대한 굴종의 고백"이라며 "파병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도록 의원 전원에게 찬반 조사를 벌여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盧대통령은 재신임 과정에서 여론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보수단체들은 지지 의사를 밝혔다. 재향군인회(회장 李相薰)는 "이라크 추가 파병은 국익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라며 "정부의 조속한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자유총연맹(총재 權正達)은 "파병을 반대하는 정치인과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국익을 고려해 어렵게 결정한 이상 소모적 논쟁으로 파병 장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키지 말라"고 촉구했다.

중도보수 노선의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도 "盧대통령이 어려운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결정한 만큼 파병 반대 투쟁으로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이념 대립과 갈등이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반응도 연령과 직업에 따라 엇갈렸다. 퇴직 공무원인 최강석(60)씨는 "어차피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지하고 있는 처지인데, 어떻게 미국의 요구를 외면할 수 있겠느냐"며 현실론을 폈다. 그러나 인하대 의대 4년 김정훈(27)씨는 "이번 결정으로 대한민국은 자주외교를 포기한 미국의 종속국가로 국제적 위상이 곤두박질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도 보수-진보 간 논쟁이 치열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엔 "정부는 파병에 반대하는 환상적 이상주의자들의 말에 신경쓰지 말고 파병을 강력히 추진해 달라"(허영욱)는 지지와 "노무현은 이미 수구 매국노 집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오묵토)는 비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노사모에선 "노짱의 고민과 결단을 이해하자"는 의견이 다수인 가운데 일부 회원은 "노무현을 더는 믿을 수 없다"며 탈퇴를 선언하는 등 진통이 일고 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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