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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Blog] 떠오르는 '일본침몰' … 그 이유가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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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초난강(32)을 아십니까. 일본의 인기 남성그룹 스마프(SMAP)의 멤버이자 영화배우.MC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 한국에도 팬이 많지요. 일본에서 한국어로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한국어 교재도 펴낸 친한파 연예인입니다. 초난강이란 이름도 본명인 구사나기 쓰요시의 한자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입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 두 편이 최근 동시에 개봉했습니다. 한국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에선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고교생 동구(류덕환)가 짝사랑하는 일본어 선생님으로, 일본 영화 '일본침몰'에서는 일본을 침몰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잠수정 조종사 오노데라로 나오지요.

하지만 그의 소속사에서 "'일본침몰'에는 초난강이란 이름을 쓰지 말아 달라"고 특별히 요청한 덕분에 같은 배우가 '천하장사…'에선 초난강이 되고, '일본침몰'에선 구사나기가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배우의 이름만 이중적인 게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일본침몰'이란 영화 자체가 그렇습니다. 지난달 31일 개봉해 첫 주말 흥행순위에서 '괴물'을 누르고 1위에 올랐습니다. 개봉 직후 나흘간 관객 수는 48만 명으로 애니메이션이 아닌 일본 실사영화 중에선 역대 최고의 성적이라고 합니다. 20억엔(약 165억원)이란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고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 이 정도로 잘 될 줄은 몰랐습니다.

흥행 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반일 정서입니다. 제목 그대로 일본이 침몰했으면 하는 묘한 상상력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거죠. 영화사도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개봉 직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네티즌의 절반 이상(55%)이 "일본이 침몰해도 도와주지 않겠다"고 답했죠. 그러나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일본침몰'은 결코 반일 정서를 만족시켜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본 자위대가 첨단 장비를 화려하게 선보이는 장면 등은 은근한 거부감이 생기게 합니다.

'일본침몰'의 성공으로 국내 극장가에서 일본 영화의 저변이 넓어질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추세로 봐선 다소 회의적입니다. 올 들어 20여 편의 일본 영화가 개봉했지만 상당수는 관객 수 10만도 넘기지 못하고 주저앉았거든요. 그 중에는 '일본침몰'보다 재미나 작품성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침몰'의 성공을 영화사의 이해와 국내 관객의 반일 정서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생겨난 '돌연변이'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반일이니 반한이니 하는 정치성 짙은 영화보다 '러브레터'처럼 진솔한 사람 이야기를 담은 일본 영화가 국내에서 다시 인기를 끄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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