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의 소속사에서 "'일본침몰'에는 초난강이란 이름을 쓰지 말아 달라"고 특별히 요청한 덕분에 같은 배우가 '천하장사…'에선 초난강이 되고, '일본침몰'에선 구사나기가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배우의 이름만 이중적인 게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일본침몰'이란 영화 자체가 그렇습니다. 지난달 31일 개봉해 첫 주말 흥행순위에서 '괴물'을 누르고 1위에 올랐습니다. 개봉 직후 나흘간 관객 수는 48만 명으로 애니메이션이 아닌 일본 실사영화 중에선 역대 최고의 성적이라고 합니다. 20억엔(약 165억원)이란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고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 이 정도로 잘 될 줄은 몰랐습니다.
흥행 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반일 정서입니다. 제목 그대로 일본이 침몰했으면 하는 묘한 상상력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거죠. 영화사도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개봉 직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네티즌의 절반 이상(55%)이 "일본이 침몰해도 도와주지 않겠다"고 답했죠. 그러나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일본침몰'은 결코 반일 정서를 만족시켜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본 자위대가 첨단 장비를 화려하게 선보이는 장면 등은 은근한 거부감이 생기게 합니다.
'일본침몰'의 성공으로 국내 극장가에서 일본 영화의 저변이 넓어질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추세로 봐선 다소 회의적입니다. 올 들어 20여 편의 일본 영화가 개봉했지만 상당수는 관객 수 10만도 넘기지 못하고 주저앉았거든요. 그 중에는 '일본침몰'보다 재미나 작품성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침몰'의 성공을 영화사의 이해와 국내 관객의 반일 정서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생겨난 '돌연변이'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반일이니 반한이니 하는 정치성 짙은 영화보다 '러브레터'처럼 진솔한 사람 이야기를 담은 일본 영화가 국내에서 다시 인기를 끄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주정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