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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봄」에 굴복/몽고 다당제 개헌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소ㆍ동구개혁 물결타“정치개혁” 서둘러
몽고인민혁명당(공산당)이 다당제 수용을 포함한 획기적인 새로운 헌법을 오는 6월까지 제정키로 하는 정치개혁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은 최근 울란바토르의 대규모 시위등 몽고인민들의 민주화 요구 대세에 밀린 결과로 보인다.
몽고에도 불어닥치기 시작한 이 「민주화의 봄」은 1921년 소련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공산정권을 수립한 몽고로 하여금 소련ㆍ동구에 이어 공산당독재의 실패를 자인케한 셈이기도 하다.
몽고는 정권수립 때부터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사실상 소련의 소국이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몽고는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추진이후 소련ㆍ동구의 변화를 면밀히 분석,86년부터 정치개혁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제19회 당대회에서 「사회주의 민주화」 강령을 발표,몽고식 개방(일토르)ㆍ개혁(쉬누르크리트)을 추진키로 하고 ▲신 경제정책의 공개주의 ▲기업의 자주결정권 확립 ▲독립채산제 등을 도입했다.
이에따라 사기업이 늘어나고 97%에 달하던 소련ㆍ동구 일변도의 대외교역도 미ㆍ일 등 서방국으로 그 폭이 넓어졌다.
일본ㆍ스웨덴 기업들의 합작투자가 활발해지고 미 맥도널드사의 울란바토르 지점설치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개혁정책은 일부 보수정치국원들의 반발에 부딪쳐 그 속도가 늦어졌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무뎌지자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국민들은 오히려 정치에 높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외국어를 공부하고 민족의 장래를 논의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났으며,온 국민이 라디오ㆍ신문에 귀를 기울이고 국내외 정치가 가장 중요한 화제로 등장하는등 민중의식이 성숙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가세한것은 「칭기즈칸 열풍」.
그동안 공산당은 칭기즈칸을 야만인,학살자로까지 비하시켜 왔으나 소군이 89년 철군하고 민주화 운동이 진행됨에따라 울란바토르에는 칭기즈칸이 민족의 영웅으로 재부상,칭기즈칸 배지를 단 시민들이 늘어나고 칭기즈칸 보트카까지 생겨났다.
현재 유고ㆍ몽고가 합작 건설중인 호텔이름도 「칭기즈칸 호텔」로 결정되었다.
경제면에서는 해마다 GNP의 50%에 달하는 8억8천만달러의 원조를 해주던 소련이 자국 사정때문에 이를 대폭 삭감,정부재정 상태는 악화됐다.
게다가 공업 우선정책의 추진으로 최대산업인 목축업이 쇠퇴,여기에 종사하는 인구 절반의 1백만 유목민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지난해 1월엔 혁명이후 최초의 지하조직 「신시대」 명의로 당ㆍ정부를 비난하는 유인물이 시내 곳곳에 나붙었다.
지난해 12월에는 동구변혁에 자극된 지식인ㆍ예술인 등 시민들이 몽고민주연맹(MDU)을 조직,혁명이후 최초로 반정부 시위를 벌여 오랜 침묵의 잠에서 깨어났다.
몽고의 정치개혁이 시민ㆍ당 간의 유혈충돌 없이 빠른 템포로 이뤄지고 있는것은 몽고정부가 소련ㆍ동구를 휩쓸고있는 개혁물결에 자극받아 강도를 더해가는 국민들의 불만을 더이상 통제할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MDU와 시민들은 여기에 만족치 않고 지난 11일엔 인민대회간부회의장(국가원수) 바트문흐 및 공산당 정치국원들의 사임을 요구하는 등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해 울란바토르 공산정권을 계속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오체영기자>
◇몽고개황 ▲면적=1백56만평방km ▲인구=2백5만명(89년) ▲GNP=18억5천만달러(86년ㆍ세은추계) ▲1인당 GNP=9백80달러(동) ▲공산당원=9만명 ▲군병력=2만4천명. 90년말까지 1만3천명 삭감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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