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범람하는 '코드 홍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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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하반기까지 집값이 많이 내릴 것."(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

"'비전 2030'을 위해 세금을 늘려도 선진국보다는 낮은 수준."(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

"8.31 부동산 대책은 80점 이상."(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

최근 일주일 새 경제관료들이 라디오 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정책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로 아침 시사 프로그램에서다. 이 방송국, 저 방송국을 돌며 하루에 세 번이나 겹치기 출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 정책이 궁금하면 라디오를 먼저 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노무현 정부 들어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면서 달라진 풍속도다.

정부는 정책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의 이해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의 이해당사자나 국민과의 의사소통이 단절된 채 이뤄지는 일방통행식 홍보라는 비판도 함께 나오고 있다.

◆ 왜 유독 라디오에 나가나=유행처럼 번지는 라디오 출연은 1930년대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과 비슷하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펴면서 라디오를 통해 화롯가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얘기하듯 국민에게 호소해 인기를 끌었다.

경제관료들은 "속시원하게 충분히 말을 할 수 있어 라디오가 편하다"고 말한다. 미리 정해둔 문답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답하기 난처한 돌발성 질문이 없다는 게 안심스럽다는 얘기다. 또 TV 카메라를 의식할 필요가 없으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화로 어디서나 출연할 수 있어 업무에도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재경부 관료들은 8월에만 라디오에 총 12차례 출연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들어 국정홍보처가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홍보를 각 부처에 주문하면서 라디오 출연도 부쩍 잦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혼선 빚는 말도 많아=7월 7일 박병원 재경부 차관은 라디오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가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가 곧 기자실에 내려와 "그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방송을 듣고 "대안을 전제로 한 폐지"라며 거세게 항의했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국민에겐 출총제를 둘러싸고 정부부처 사이의 입장 차이가 있거나, 정책 혼선을 빚고 있다는 인상을 준 것이다.

특정 사안을 놓고 겹치기 출연을 하면서 자화자찬이나 해명성 발언을 녹음기 틀 듯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는 지난달 30일 하루에만 3개 프로그램에 나와 "8.31 대책으로 부동산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장병완 예산처 장관도 지난달 31일과 1일 라디오에 연속 출연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비전 2030'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정해방 예산처 차관은 '비전 2030'으로 증세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달 31일 라디오에서 아예 "국채보다는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게 낫다고 보지만 국민과 논의해야 한다"며 증세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은근히 떠보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각 부처는 "라디오 출연은 방송사가 먼저 요청해 응한 것"이라며 "국민에게 생생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재천 한림대 특임교수는 "라디오 출연 자체를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면서도 "토론 형식이 아닌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말만 전달한다면 결코 유익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 경제부처 홍보 담당자는 "연말에 부처별 홍보실적을 평가할 때 기고문과 오보 대응에 더해 방송 출연 등도 중요한 항목이어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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