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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고시생들 애환 네 컷 만화에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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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웬만한 취직시험이 옛날 고등고시만큼 어려워진 요즘, 두꺼운 수험서적에 얼굴을 파묻고 하루를 보내는 청년들의 모습은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닐 게다.

고시생들의 애환을 그린 네 컷 만화 '고돌이의 고시생 일기'(김영사.7천9백원)를 펴낸 사법연수원생 이영욱(李永旭.32)씨도 지난해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하기 전까지 그런 풍경 속에 있었다.

사회인도, 학생도 아닌 모호한 처지를 서글퍼하면서. 고시촌 식당의 저녁 반찬으로 요일을 구별하는 생활에 익숙해진 만화 주인공 '고돌이'의 모습은 李씨 자신과 친구들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李씨가 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차 시험에서 한 차례 낙방의 쓴 잔을 마시고 난 뒤인 2000년 초. 가족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직접 네 컷 만화를 들고 고시관련 정보지를 찾아가 연재를 제안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앞으로 1년을 다시 공부만 해야 한다니 너무 막막했다"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나누면서 위로하고 싶었다"고 돌이킨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만화가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생(고려대 법학과) 시절부터 만화동아리에서 활동했던 李씨는 졸업 무렵 문화센터에서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을 익혔고, 동료들과 만든 2분여 분량의 '그 날밤에 생긴 일'은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단편부문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첫 직장인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거쳐 광고회사로 옮겨가서도 그는 같은 꿈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결국 가족의 권유로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만화 속 고돌이가 부담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는 고시를 신분상승의 기회나 한탕주의로 보는 시선이다. 고돌이는 고시생들이 '인간으로' 신분상승을 꿈꾼다는 점에 동의한다.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예당한 수험생의 단조롭고 외로운 생활이 '인간이하의 삶'이라는 전제에서다.

"법대를 안 나온 사람들까지 고시를 보는 게 부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외국에는 아예 학부에 법학과가 없잖아요. 나름대로 자기 꿈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봐주셨으면 해요."

연수원생 신분이라 여간 말조심을 하지 않는 그가 어렵게 털어놓은 생각이다.

요즘 그는 연수원생들의 홈페이지에 '고돌이의 연수원 일기'라는 만화를 연재 중이다. 저작권 관련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그는 미래에도 만화를 그리는 펜을 놓지 않을 것이란 짐작이 갔다.

글=이후남,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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