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8월의 총성 멎었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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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동은 좀처럼 바람 잘 날 없는 곳이다. 8월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01호에 따라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에 휴전이 이뤄졌지만 이번 분쟁을 둘러싼 논쟁까지 멎은 것은 아니다.

미국을 보자. 최근엔 조지 W 부시 대통령조차도 눈길을 끄는 슬로건을 만들어 내는 데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돌아보면 지난 몇 년 동안 '테러와의 전쟁(GWOT:Global War on Terror)' '로드맵(Road Map:단계적 중동평화안)' '중동 파트너십 이니셔티브(MEIP:Middle East Partnership Initiative:중동평화 지원방안)' 등 부시 행정부는 신조어를 남발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전투가 한창일 때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중동(New Middle East)'이라는 꿈같은 구상을 내놓았다. 이스라엘.이집트.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가 중심이 되어 중동 지역에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 내놓은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이 구상은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다. 레바논 전쟁이 한창일 때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즉각적인 휴전을 미루며 '새로운 중동'을 내세웠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이스라엘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레바논의 무고한 민간인 수천 명이 집을 잃거나 불구가 되고 목숨을 잃은 다음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새로운 중동 구상을 이끌기를 원한 국가들조차 이러한 상황에 놀라 레바논 사태와 거리를 두려고 애쓰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폐허가 된 레바논의 재건을 위해 5억 달러를 내놓는 것으로 손을 털었다. 이집트의 대권 계승 예정자로 알려진 가말 무라바크(호스니 무라바크 대통령의 차남)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한 지 4주째가 돼서야 베이루트를 방문했다. 이집트 국민은 정부의 늑장 대응에 분노했고, 언론은 그에게 맹렬한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이처럼 중동에서 미국이 구상하는 것은 무엇이든 각국 정권에 '위험물'이 되기 일쑤다.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은 유엔의 레바논 휴전 요구 결의를 지연시키면서 '문제의 뿌리(the roots of the problem)'를 근원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안보리 결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헤즈볼라의 무장을 해제하거나 최소한 이들을 이스라엘과 접한 레바논 남부에서 먼 곳으로 몰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언뜻 합리적인 요구 같다. 그러나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다른 나라들은 이스라엘의 비타협적 태도와 거만함,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의 맹목적인 지지를 문제의 진짜 뿌리로 여기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2004년 유엔 결의 1559호(레바논 주둔 외국군 철수안)의 이행이 지체되고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1947년 유엔 결의 49호(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구로 분할)를 비롯한 이스라엘에 불리한 10개의 다른 유엔 결의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동안 유엔은 팔레스타인 문제의 공정한 해결을 위해 여러 결의를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계속 무시해 왔다. 3억 아랍인과 10억 무슬림에게 중동 갈등의 뿌리는 헤즈볼라가 아니다. "우리는 만연한 불의에 저항하고 있을 뿐"이라는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말은 일리가 있다.

문제의 근원은 하나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분쟁 당사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만 내세운다. 누구의 고통이 더 크고 어떤 뿌리가 더 깊은가를 논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불평을 늘어놓기만 하는 일은 불평을 더욱 키울 뿐이다.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상대방의 입장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총소리는 멎었다. 우리는 무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비극적 학살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면 총성이 멎는 시간은 아주 잠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아둣딘 알이브라힘 카이로아메리칸대 교수

정리=이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