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대 초반의 무명 '기타 마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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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의 마법사'로 극찬 받은 임정현씨가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홍대 클럽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20대 초반 한국 청년의 신들린 기타 선율이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 네티즌을 사로잡았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27일자에 기타리스트 임정현씨(22.오클랜드대 휴학 중.정보기술 전공)와의 e-메일 인터뷰를 연주 장면을 담은 사진과 함께 크게 실었다. "화제의 기타 연주 동영상을 통해 '펀투(funtwo)'라고 알려진 마법의 웹 기타리스트 정체가 마침내 드러났다"는 내용이다. 제목은 "Web guitar wizard revealed at last." 신문은 "한국의 무명 기타리스트인 그의 손놀림 속도와 정확도는 기존 기교파의 기록을 깨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네티즌의 찬사도 쏟아졌다.

"지미 헨드릭스(작고한 미국의 유명 기타리스트)보다 낫다" "메탈리카(미국의 유명 록밴드)가 몸 전체에 갖고 있는 능력을 한 손에 가졌다" 등이다.

그의 연주 동영상이 올라 있는 미국의 '유튜브닷컴(youtube.com)'에서는 조회 수가 770만 회를 넘어 역대 6위를 기록했다. 댓글도 1만7000개가 넘었다.

미국 언론과 전 세계 네티즌으로부터 '기타의 마법사'란 극찬을 받은 임씨는 현재 서울 홍대 앞 클럽에서 연주하는 4인조 언더그라운드 록밴드 '롤리타'의 기타리스트다.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연주 동영상을 처음 인터넷에 올릴 때는 혹평이 나올 줄 알았어요. 출중하지 못한 실력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끈 걸 보면 '마법사'란 표현은 맞는 것 같네요."

유명세의 발단은 지난해 10월 국내 음악사이트 '뮬'(mule.co.kr)에 5분20초짜리 연주 동영상(요한 파헬벨 '캐논'의 록 버전)을 올리면서부터다. "나의 기타연주를 사람들에게 평가받고 싶었다"는 게 이유다. 계기는 대만 기타리스트 제리 창의 '캐논' 연주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접한 것이다. 그는 "그 비디오를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라웠다. 제리의 홈페이지에서 악보와 사운드 트랙을 찾아가며 혼자 연습했다"고 말했다. 그가 오클랜드 집에서 캠코더로 찍은 셀프 동영상은 때마침 창문으로 스며든 햇빛이 비스듬히 비치면서 기타 선율을 더욱 감미롭게 만들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연주한 동영상은 국내외 사이트로 확산되면서 그를 일약 '얼굴 없는 천재 기타리스트'로 만들었다.

제리 창의 홈페이지에서는 한 말레이시아인이 '펀투'를 사칭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진짜 '펀투'로 알까봐 홈피에 글을 남겼더니, 제리의 팬들이 더 큰 관심을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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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3 때 처음 기타 잡아=임씨가 기타를 처음 잡은 것은 중3 때. 집에 굴러다니는 통기타를 뜯으며 재미를 붙였고, "멋있어 보여서" 전자기타까지 손에 쥐게 됐다. 기타를 정식으로 배운 것은 두 달간 강습이 전부. 5년간 독학으로 기타를 마스터했다. 고교 1년 때 뉴질랜드로 유학 간 그는 방학 때만 하는 국내 밴드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6월 휴학했다. 2004년 친구들과 결성한 '롤리타'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그는 매주 금요일 홍대 클럽에서 공연한다. 기타리스트 누노 베텐코트, 에릭 존슨, 존 페트루치 등을 존경한다는 그는 시종 겸손한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제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보다 잘 치는 분이 얼마나 많은데요. 실력보다 외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한 것 같아요. 캐논이 워낙 유명한 곡이고, 햇빛 조명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었죠."

동영상에서 모자를 눌러쓴 것은 '외모가 별 볼일 없는 데다' 사람들이 외모보다 연주에 집중해주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지금까지는 음악을 취미로 해왔는데, 앞으론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네요. 다음달 22일 홍대 클럽에서 공연하는데, '캐논'을 연주할지 안 할지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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