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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부부재산 무조건 반반씩' 민법 개정안 어떻게 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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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왼쪽부터 전경근 아주대 교수, 이박혜경 인천발전연구원 여성개발센터장, 강치원 교수, 강지식 검사. 김태성 기자

결혼 후 모은 재산은 부부 공동의 것일까 각자의 것일까? 재산은 공동 명의로 해야 하나 별도 명의로 해야 하나. 지난달 법무부가 부부 재산분할과 상속에 관한 민법 개정안을 발표한 뒤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본지 8월 10일자 10면).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법무부 ▶한국여성의 전화 연합(이하 여전) 등 여성단체 ▶여성학자들이 주축이 된 '페미니즘을 돌아보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페미니즘 모임)'이다. 29일 오후 중앙일보에서 세 입장을 대표한 전문가들이 만났다.

▶강치원(사회)=법부무가 발표한 부부재산제 민법 개정안에 대해 이견이 많은 이유가 뭔가.

▶강지식(법무부)=현행 부부재산제가 양성평등 원칙을 잘 반영하지 못해 개정안이 나오게 됐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부부가 재산을 균등하게 나눌 수 있게 하고, 부부재산을 처분할 때 일부 제한을 두는 등의 제도를 도입했다.

▶전경근(여전)=재산은 부부 공동소유라고 하지만 법에는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 부부가 공동으로 재산을 갖고 공동으로 처분하는 부부공동재산제가 돼야 한다. 상속을 받을 때는 부부 공동재산이니 배우자는 원래 자신의 몫인 절반을 갖고 나머지를 배우자와 자녀 등이 똑같이 나눠 상속하는 게 옳다.

▶이박혜경(페미니즘 모임)=법무부 개정안은 이중원칙의 문제가 있다. 부부가 재산을 분할하거나 상속할 때 절반씩 나누도록 했으면서 재산 분할 청구(소송) 때는 정상을 참작해 액수를 결정하는 과거 규정을 그대로 두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불공평이다. 재산을 형성할 때 부부 중 한 사람의 기여가 월등히 많은데도 똑같이 나누는 건 옳지 않다. 한쪽의 희생을 강요한다. 부부가 재산을 같이 나누는 건 아름답지만 그게 법이 강제할 사항인가. 여성단체에서는 재산을 균등하게 나누는 게 성평등이라고 보는 것 같은데 성평등도 정당해야 한다. 그렇게 재산을 나누는 게 반드시 여성에게 이익이라고 할 수도 없다.

"배우자의 기여도 따져 재산분할해야 공평"

▶강=전업주부가 재산 형성에서 한 기여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개정안을 마련했다. 균등 분할을 원칙으로 하되 배우자 한쪽의 기여를 입증하면 법원 재량으로 분할 액수를 정하게 했다.

▶이박=그동안 이혼을 하면서 재산분할을 할 때는 여성의 가사노동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법무부 안은 여성계가 주장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가정마다 재산형성 방법과 부부의 기여도가 다르다. 입증하기 어려워도 법원에서 이를 따지도록 하는 게 옳다. 여성의 기여는 가사노동뿐 아니라 직장에 다니는 등 다른 것도 있다. 법무부 안은 균등분할 원칙을 둠으로써 성평등적이고 여성에게 유리한 법이라는 인상을 준다. 남성들이 억울해 할 수 있다.

▶강=법은 대강의 틀을 잡고 구체적인 것은 사법부가 판단한다. 재판은 양 당사자의 얘기를 듣고 판단하기 때문에 전업주부가 자신의 기여를 입증하지 못하면 억울할 수 있다. 아이 키우고 살림하고 남편 뒷바라지를 했지만 전업주부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입증도 어렵다. 개정안에선 전업주부가 자신의 기여분을 잘 입증하면 재산의 절반 이상도 받을 수 있다.

▶사회=현행법에서는 재산을 나눌 때 취업 주부는 재산의 절반을, 전업주부는 30~40%를 받는다. 개정안은 현행보다 여성에게 좀 더 유리한가.

▶강=남편이 돈을 벌고 아내가 살림하는 경우라면 여성이 유리하다. 하지만 남편이 놀고 부인이 생계유지를 책임지고 있을 때는 남편에게 더 유리하다. 여성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개정안을 만든 것은 아니다.

▶사회=법무부 안이 '남편=생계부양' '아내=가사노동'의 성별 분업을 고착화한다는 비판이 있다.

▶강=여성이 경제적 이유만으로 사회생활을 하진 않는다. 능력 발휘의 측면도 있다. "재산을 나눌 때 절반을 주니까 나는 전업주부로 남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박=이혼할 때 재산을 똑같이 나눠야 하니까 남성이 결혼을 꺼릴 수도 있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개정안이 결혼에 대한 태도를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강=재산분할의 전제는 혼인 중 형성된 재산에 대한 기여도를 따지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왜곡된 태도를 낳는다고 보지 않는다. 결혼 후 남편이 100억원을 벌었다 해도 가사노동 가치를 인정해 아내에게 50억원을 주는 것은 불합리하다.

▶전=재산을 나눌 때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절반을 여성에게 주면 현재처럼 여성의 가사노동 전담이 고착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사노동의 가치가 문제가 되는 것은 교통사고가 나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등에 문제가 된다. 재산분할을 할 때 가사노동 가치가 재산 형성의 40%인가 50%인가 따질 사항은 아니다.

▶사회=여성의 가사노동을 인정해야 한다면 남성의 사회적 기여, 예컨대 군 복무 문제 등은 어떻게 봐야 하나.

▶이박=흥미로운 질문이다. 여성학자나 여성운동계가 앞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남성들은 군복무의 강제성이 있기 때문에 개인이 본 손실에 대해 국가가 보상해 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한데 왜 하필이면 취업할 때 보상을 해야 하나. 이는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의 보상법이 필요하다. 여성이 대체복무에 참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부공동재산제는 공동생활 의미 법에 반영한 것"

▶사회=개정안의 상속제가 혼인 중 재산분할을 미리 한 경우에 비해 배우자의 재산이 줄어든다는 비판이 있다.

▶강=어느 법제든 상속제도는 명확하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채무도 상속되므로 마찬가지다. 재산분할을 통해 기여분을 먼저 받고 나머지를 상속받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타당하다. 하지만 혈족과 배우자 사이에서 상속문제로 다툴 경우 배우자 한쪽이 사망한 상태에서 혼인 중 부부의 기여분을 어떻게 계산하겠나? 그래서 상속재산의 절반을 배우자가 상속토록 했다. 유언이 있을 경우 유언이 법적 상속분보다 우선한다. 배우자 절반 상속이 황혼 재혼을 막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현행법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유언으로 재혼한 배우자에게 가는 상속분을 한정할 수 있다.

▶전=사람이 사망하자마자 기여분을 따지고, 재산을 나누고 상속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다. 우리 입장은 재산분할 방식과 마찬가지로 재산의 절반을 배우자가 갖고 나머지를 배우자와 자녀 등이 똑같이 나눠 상속하자는 것이다.

▶사회=개정안에서는 자녀가 한 명이면 배우자 상속분이 현행법보다 줄어드는 문제가 있는데.

▶강=현행법에선 배우자가 자녀보다 1.5배를 받도록 정하고 있으나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배우자 상속분을 조금 늘리자는 취지였다. 개정안에서 상속분의 절반을 줄 것이냐 아니면 60% 또는 70%를 줄 것이냐 하는 것은 정책적 판단일 뿐이다. 부부재산 분할을 할 때 배우자에게 절반을 주기 때문에 상속에서도 절반을 주자고 정했다. 자녀가 한 명일 경우 개정안대로 하면 현행법(상속분의 60%)보다 불리하다. 현행보다 불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단서조항을 두는 것은 어렵다.

▶사회=부부공동재산제가 근대 시민법 체계의 개인주의와 맞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채무도 부부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전=부부공동재산제란 혼인 중 취득한 재산을 부부가 공동으로 가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기 명의의 재산을 가질 수도 있다. 부부공동재산제는 부부가 공동생활을 한다는 점을 법에 반영하자는 취지다. 부부공동재산제가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 것은 아니다. 공동재산제의 가장 큰 약점은 채무문제다. 부부가 공동으로 채무를 부담하게 된다. 하지만 도박 등의 경우는 재산 분할을 우선 해 공동부담을 없앨 수 있다.

▶이박=부부 별산제에서 여성이 자기 주장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여성명의의 재산이 없다. 자기 재산을 자기 명의로 하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부인이 가사노동을 하면서 부업을 해 집을 사도 증여세를 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부인의 소득을 증명할 수 없어 남편 수입으로 샀다고 간주하고 아내에게 증여세를 내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편이 아내에게 지분을 인정해 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지금과 같은 별산제에서는 사회가 보호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재산이 모인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 부부공동재산제다.

"민법개정안이 결혼 기피 촉진할 수도"

▶사회=이번 민법개정안이 출산율 저하나 결혼 기피 등의 문제를 낳지는 않을까.

▶전=이혼할 때 재산분할 청구가 가능해 이혼이 늘어난 건지, 아니면 이혼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이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일본에선 남편이 퇴직금을 받고 난 뒤 이혼하는 황혼이혼이 최근 줄었다. 이는 퇴직 후 받는 연금에도 재산 분할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상속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출산을 기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재산균등 분할로 인해 결혼을 기피하거나 사실혼이 증가할 수는 있다고 본다.

▶강=그런 걸 미리 염두에 두고 법을 만들지는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대처할 뿐이다. 자식 때문에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혼인 중 재산 분할 청구를 하게 되면 이혼이 늘 것으로 예상하지만 예단하긴 힘들다.

▶이박=결혼 기피는 여러 원인으로 인해 생겨난다. 혼인 중 재산 분할 등 때문에 사실혼 관계에서의 출산이 많아지리라 본다. 이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늘어날 것이다.

정리=문경란 여성전문기자.이원진 기자 <moonk21@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 바로잡습니다

8월 31일자 29면 '논쟁과 대안'은 민법 개정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토론을 다뤘습니다. 부부 재산을 상속할 때 어떤 비율로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 참석했던 정경근 교수는 전경근(아주대) 교수를 잘못 표시한 것입니다. 전 교수께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