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기상 가득한 폭탄주 '산사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산사의 눈물'을 들어보셨는지.

최근 주당(酒黨) 사이에 폭탄주 '산사의 눈물'이 화제다. 이름부터 제법 문학적이다. 폭탄주에 대한 한국인의 각별한 열정(?)이 듬뿍 느껴진다. 하지만 제조법은 간단하다.

'참이슬(눈물)' 소주를 아래에 놓고, 그 위에 '산사춘'(산사)을 올려놓는다. 당연 미리 뚜껑을 따야 한다. 수직으로 세워 놓은 두 술병 안에서 알코올이 섞이기 시작한다. 알코올 농도 차이에 따라 위, 아래의 술이 자연스럽게 혼합되는 것이다.

단, 인내를 가져야 한다. 두 병의 알코올 농도가 고르게 되려면 5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기자도 소문을 듣고 한번 따라해 보았다. 예상대로 제조는 어렵지 않았다. 술병을 올려놓은 탁자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 된다. 술병이 떨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제조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산사춘 라벨에는 삼족오(三足烏.세발까마귀)가, 참이슬 라벨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두꺼비가 인쇄돼 있었다. 물론 우연에 불과하겠지만 삼족오와 두꺼비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각각 해와 달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고구려 벽화에서 해는 동그란 원안에 세발까마귀가 들어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며, 달은 역시 원 안에 두꺼비, 혹은 옥토끼.계수나무가 들어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9월 2일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고구려 벽화 사진전이 시작되니 직접 가서 한번 확인하는 것도 좋겠다. 폭탄주 '산사의 눈물'이 1500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음(陰)과 양(陽)의 만남을 구현한 셈이다. (※기자의 문학적 과장을 양해해 주시길…. 술맛은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최근 유행하는 폭탄주로는 '천국의 눈물'이 있다. 제조법은 '산사의 눈물'과 동일하다. 소주 위에 산사춘 대신 '천국'을 올려놓으면 된다. 주당들의 끝없는 아이디어가 어디까지 계속될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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