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보다 「정 우위」 재확인/고르바초프 당서기장 사임설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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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권력구조상 실각아닌 입지 강화/당 약화시켜 보수파 공격 벗어나
현재 나돌고 있는 고르바초프가 당서기장직을 떠나 최고회의 의장에 전념할 것이라는 추측의 배경은 그가 당에 대해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으며,당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입장에서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 나가리라는 분석에서 나온것이다.
따라서 설사 그가 서기장직을 내놓더라도 종래 소련의 권력구조에서 볼수 있던 「서기장직 상실=실각」이라는 등식으로 이번 상황을 볼수없으며 오히려 고르바초프의 권력강화로 해석할수 있다.
프랑스의 권위있는 일간지 르 몽드는 지난달 30일자 신문에서 고르바초프가 이번 당중앙위총회를 당내 보수파 일소의 기회로 삼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같은 분석의 배경은 지금까지 고르바초프가 보여준 정치스타일,즉 위기에 처할수록 강해지며 언제나 선제공격으로 상대를 제압해온 개인적 정치역량,그리고 객관적으로 현상황에서 소련 지도부내에 그를 대신할만한 인물이 없다는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이처럼 자신과 당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은 그동안 당이 자신의 개혁정책 추진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일종의 「실망」 때문이다.
그의 개혁정책은 현재 경제문제와 민족문제로 심한 곤경에 처해 있음에도 당은 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의 개혁을 방해하는 측면까지 보이고 있다.
실제로 당의 최고권력기구인 중앙위 정치국원 11인중 완전한 고르바초프세력은 그 자신을 포함,3인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중도 또는 보수파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언제든지 힘을 합해 고르바초프를 공격해 오면 비록 치명상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곤경에 처할 것이 분명하다.
이와함께 고려해야할 것은 지금까지 고르바초프 정치개혁의 요체가 당과 정의 분리였다는 사실이다. 고르바초프는 지금까지 소련정치의 특징이었던 정에 대한 당의 우위라는 기본틀을 깨고 정의 부활,그중에서도 특히 의회(소비에트)의 기능을 되살려 그 자신이 최고의장으로 취임함으로써 최고회의를 당에 맞서는 존재로까지 키워놓았다.
만약 고르바초프가 당을 떠난다할 경우 그의 입장에선 당을 「어느 정도」까지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당의 압력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개혁정책을 추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당을 약화시킬수 있는 방법으로 고려될수 있는 것은 헌법 제6조의 소위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최근들어 소련내부에선 주로 급진개혁파를 중심으로 정치적 다원화를 위한 다당제도입과 헌법상 공산당의 권력독점조항 폐기요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번에 고르바초프가 기자들에게 밝힌 「소련정치구조상 중대변화」 예고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하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로서는 당을 방치할 수는 없다. 당은 여전히 소련의 중핵적이며 절대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당 서기장은 자신이 절대 신임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면 안된다.
미국의 CNN­TV 보도에 따르면 정치국원 야코블레프가 신임서기장을 맡을 것이라고 하는데,야코블레프는 고르바초프에게 페레스트로이카를 심어준 인물로 현재 소련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고르바초프의 최고브레인역을 맡고있는 그의 오른팔과 같은 인물이다.
한편 당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최고회의의장 고르바초프에겐 마치 미국ㆍ프랑스 대통령의 그것과 같은 강한 권력이 주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선제공격에 능하며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상대방이 깜짝놀랄 조치를 취함으로써 곤경을 벗어나는데 천부적 자질을 갖춘 고르바초프가 보여줄 「작품」이 어떻게 가시화될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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