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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물가는 "부르는게 값"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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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아르헨티나의 곤살레스 경제장관은 최근 대형 국영기업들을 대부분 매각하겠다고 공표했다. 또 석유·가스·석탄·수력등 여러 부문으로 분리되어 있는 에너지 관련 국영기업들을 통합, 향후 2개월내에 새로운 연방연료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노조측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야만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다소라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지난해7월 출범한 현메넴정권은 알폰신정권에 이어 오랜 군정끝에 2대째 민정을 이끌고 있으나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해 벌써부터 권좌가 흔들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아르헨티나 경제의 현주소는 말이 아니다.
89년 인풀레율 4천9백24%, 외채 6백억달러, 아우스트랄화 1만% 평가절하, 외채이자상환 전면연기등 이른바 악재들의 연속이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경제 라고도 말할수 없을 정도의 각종 지표가 총망라된 상태라 할 수 있다. 경제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경우인 셈이다. 이 나라 화폐인 아우스트랄화의 가치가 인플레율의 배이상 폭락하자 은행마다 달러등 하드 커런시 (경화)를 사려는 인파로 연일 장사진을 이루었고 이들은 은행안에서 식사를 하고 잡지를 보면서 무한정 기다리고 있다.
현금보유보다 현물로 갖고 있어야 손해를 덜 보기 때문에 한시간이라도 먼저 예금을 인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마다 사재기에 열을 올리게 되니 물건값이 시간마다 뛰어올라 「가격」이 없는 상황이어서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은 점원이 달라는 대로 값을 치르고 있다. 「부르는게 값 이라는 말이 그대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연초 5일간의 연휴기간동안 물가는 무려 3배가 폭등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당국은 대국민성명을 통해『꼭 필요한 물건만 삽시다』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물론 아니다.
메넴정부는 지난1일 통화증발에 의한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더 이상의 신화폐를 발행치 않기로 했다.
이와 함께 수십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단기성예금을 10년만기짜리의 공채로 강제전환하는 한편 재정적자의 주범인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강력추진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같은 당국의 각종 경제시책은 악화일로에 있는 아르헨티나 경제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빚고있다.
통화 추가공급중단으로 기업마다 돈이 달려 임금지불에 어려움을 겪고있는것은 물론 원자재구입과 세금납부를 못해 정부가 개점휴업 상태에있다.
기업들의 비명이 계속되자 메넴대통렴은 『상처에 메스를대고 고름을 빼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아픔과 항의가 있게 마련』 이라며 애써 태연한척 하고 있다.
메넴정부는 이같은 획기적인 각종 경제조치를 「나사로계획」으로 명명하고 있다. 4일만에 부활한 나사로의 기적에 비유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국내및 서방지원국, 또는 단체등의 반응은 이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부작용이 너무 많다는 이유 때문이다.
물가및 통화당국의 주장대로라면 당연히 단기적인 효과라도 가시화되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단·장기채권국인 미국·IMF(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및 미주개발은행의 반응은 사뭇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무엇보다도 원금상환은 물론 이자까지 갚지 못하겠다는데 대한 불만이 고조 돼 있는 상태다.
당초 아르헨티나는 향후10년간 각종 국제원조단체로부터 3O억달러에 이르는 원조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이와는 별도로 세계은행과 미주개발은행은 올해부터 매년 3억3천만달러규모의 차관을 제공키로 했었다.「긴급수혈」이 없이는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회생불능의 긴박한 지경에 이를 수 밖에 없다는 진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단기채의 이자상환조차 하지 못하는 나라에 더 이상 「뒷돈」을 댈 수 없다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 당초 약속을 저버릴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주장이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메넴정부는 미국에 15억달러의 긴급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고 IMF에도 같은 규모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은행연합회는 최근 아르헨티나에 대한 손해 준비금을 현행 15%에서 35%로 올릴 것을 회원사에 충고하고 있다
이른바 컨트리 리스크가 최악인 A플러스에 이르러 있다고 진단, 더 이상의 손해를 감수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메넴정부는 밀린 세금이나 부채를 국채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까지 시행하고 있다.
또 극심한 환율인상에 따른 환차익을 막기위해 크레딧 카드의 사용까지 금지시키고 있다. 신용사회의 정착보다도 화급한 국가경제부흥을 위해 나름대로 극약처방을 내린 셈이다.
이와함께 정부소유의 부동산을 일반에 매각, 재정적자폭의 축소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출범 7개월째인 메넴정부의 이같은 노력이 현재로서는 군부의 지지를 받고 있어 민정의 기틀은 흔들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서방부국들의 지원 없이 아르헨티나 경제재건은 힘겹기 그지 없을 것 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춘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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