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철수(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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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하느니,마느니 하던 미군철수는 결국 하는 쪽으로 결말이 났다. 엊그제까지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일방적인 철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던 한미 국방부가 이 사실을 공식 확인하는 발표를 동시에 했다.
그동안 미군철수에 관해 우리가 들어온 말은 두가지다.
하나는 철군을 부인하는 발언이다. 더도 말고 부시 미대통령은 지난해 7월 한국 국회에서 똑 떨어지는 연설로 주한미군 감축 계획은 없다고 했었다.
그 한달 뒤 체니 미국방장관과 우리 국방장관은 한미 연례국방장관회의를 끝내고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이보다 더한 말도 했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오히려 적을 이롭게만 하니 앞으로 이 얘기는 아예 입밖에 뻥긋도 하지 맙시다』라고 다짐한 것이다.
또 다른 말은 외국 매스컴들의 보도였다. 가까운 일본 신문들이나 미국의 매스컴들은 우리가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미군철수 문제를 계속 보도해왔다. 몇천명이,언제 철수한다더라 하는 소문 아닌 소문을 알려준 것이다.
지금 주한미군의 철수가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현실이 된 마당에 누구의 말꼬리를 잡고 시비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미군이 우리나라에 천년 만년 머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구나 미군이 박애주의 정신으로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즘은 미국 행정부나 정치인들까지도 대놓고 그렇게 말한다.
미국은 한국이 전략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중요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면 그날로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 지금도 미국은 천하에 봄이 오는듯하니까 옷을 벗으려는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추위를 느낀다면 누가 뭐래도 주둔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국제정치의 그런 냉혹한 현실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드골대통령이 생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세계는 데탕트(화해) 다음엔 안단테(협조),그 다음엔 코퍼레이션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협력의 시대가 와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문제는 우리의 자세다. 미군이 없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코퍼레이션의 외교력과 경제력,그리고 미래의 투시력이 우리에게 있는가. 새삼 우리 정치인들의 면면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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