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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을 뛴다.박서보씨<서양화가·홍익대미대학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올해는 작가생활의 한획을 굿는 중요한 해가 될 것입니다. 제작품이 세계 현대미술계로부터 어떻게 평가받느냐가 올 한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90년은 중진 서양화가 박서보씨(59·홍익대 미대학장)에게 있어 하나의 분수령을 이룰 것 같다.
박씨는 올10월 프랑스의 파리아트센터에서 대규모 초대개인전을 갖는다. 이어 이 전시작품들은 국내작가로선 처음으로 유고의 자그레브와 소련 모스크바에서 잇따라 순회전시될 계획이다.
그는 또 올6월 열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초대돼 독립된 전시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에 이어 내년 10월에는 일본의 동경화랑과 우에다화랑에서 동시에 초대개인전을 열 계획이 마련되어있다. 또 미국 LA의 커미셔너인 미치 랜도 측으로부터 미국전시회 제의도 받아 놓고 있다.
이처렴 박씨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유럽과 공산권, 일본·미국등지의 주요화랑에서 잇따라 전시회를 가짐으로써 세계화단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는 셈이다.
파리아트센터는 지난해7월 퐁피두센터와 함께 프랑스혁명 2백주년기념 현대미술제를 개최했던 저명한 화랑이다.
박씨는 이 전시회에 예수스 소토, 올리비에 드브레, 데니스 오펜하임, 카렐아펠등 현대작가 24명중한명으로 참가했었다.
이 전시회에서 박씨는「세계 어느 흐름에도 오염되지 않은독창성」으로평가를 받았고 미술기자들이 뽑는「가장 주목되는작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올10월 전시회에 박씨는 2×3 m가넘는 대작4O여점을 출품할 계획이다.
이 전시회 작품을 준비하느라 박씨는 올겨울을 서울동교동 자택의 지하아틀리에에 파묻혀 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한햇동안 열심히 그렸는데도 아직 10여점밖에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학장직도 내놓겠다고 했는데 받아 들여지지 않더군요.』
방학중인 요즘에도 하루3∼4시 간밖에 자지 않고 작품제작에만 매달려 있다. 그러나 작품이 크고 제작방식이 까다로워 애를 먹고 있다.
캔버스위에 유채를 몇번씩 겹쳐 바르고(그는 이과정을「마당을 다진다」고 표현한다) 그 위에 한지를9장이나 다시 겹쳐바른후 손가락이나 연필·쇠꼬챙이로 밀어 붙이는 식으로 작업한 후 말리는데 2∼3개월씩 걸리기 때문이다.
작품이 워낙 크다보니30여평의 아틀리에도 비즙아 작품을 뉘어놓고 스스로 고안해 만든 이동식 널빤지를 타고앉아 그린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태어난 작품이 그가 86년이후 전념해 온「후기 묘법」시리즈다·
그는 여기에서 종이(한지) 를 그림을 받쳐주는 단순한 바탕(매재)으로서가 아니라 종이 자체가 갖고 있는 물성과 작가의 표현과의 합일 또는 일체화를 추구한다.
『이제는 표현에 있어서나 재료에 있어서 독창적이지 못하면 세계 화단에서 주목받기 어렵습니다.』 90년대엔 그가 세계 현대미술계에서 어떤 입지를 차지할 것인지 지켜볼만 하다.

<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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