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5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김일성 「북조공」 책임비서에/1국1당 원칙파기… 한반도 분할음모 드러내
해방초기에 공산당은 미군정과의 충돌을 될수있는대로 피하며 잘지내려고 했다. 미국은 일제를 타도한 연합국의 주력이며 또한 그들은 조선정세가 안정되면 소련군과 함께 철수할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공산당중앙위원회로서는 미점령군 사령관 하지중장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든 인사를 치러야 했다.
정보에 따르면 송진우ㆍ장덕수ㆍ장택상등의 국민대회준비회는 박흥식ㆍ민모등 거부들에게서 돈을 모아 미군고급장교들을 접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산당에서는 그런 짓은 못하더라도 공산당을 대표해 누군가가 점령군사령관에 대해 「표경」 방문을 해야했다.
이때 또 중경의 임정이 곧 환국하리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되면 서울의 정국은 더욱더 복잡해질것이 분명했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환국하기 전에 박헌영이 하지장군을 만났어야 했다는 의견도 있고 해 임정이 환국하기 1주일전인 11월중순께 박헌영은 이경국등 몇사람을 대동하고 하지중장과 군정장관 아널드소장을 방문했다.
하지사령관은 박헌영에게 『우리들은 조선사람들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협력해달라』고 요청했고 박헌영은 이에 『세계인민들의 반파쇼공동투쟁의 선두에 서서 일본군국주의를 타도한 미국과 하지장군의 공로를 높이 평가한다』면서 『군정에 협력은 하겠으나 그와 동시에 비판과 건의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한편 12월중순께 북한에서는 소련군정치부와 김일성이 평안남북도ㆍ함경남북도ㆍ황해도등 5도의 당간부들을 공갈위협,회유매수하여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제3차 확대 집행위원회를 개최하고 책임비서 김용범의 자리를 김일성이 드디어 차지했다.
소련의 레닌이 주창했고 스탈린이 이것을 철칙으로 계승ㆍ강제해 왔던 1국1당 원칙을 스탈린과 김일성이 스스로 파괴유린하고 조선공산당만을 두당으로 쪼개버린것은 그들의 한반도 분단분할의 음모를 드러낸것이었다. 그러나 서울의 조선공산당중앙위원회는 이것을 묵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소련의 앞잡이 김일성과 싸우다는 것은 북조선을 점령한 소련군과 싸우는 것이 되며 그것은 나아가 소련ㆍ스탈린과 싸우는 것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 힘으로 소련ㆍ스탈린과 당시 싸워서 이길 가망성은 없었다. 시기적으로는 조금만 참으면 된다. 소련군만 북조선에서 철수하고나면 김일성 같은것은 우리에게 문제도 되지않았다. 북조선의 당부나 정권기관이나 사회단체 안에도 서울을 쳐다보며 박헌영을 따르는 동지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모든 정보를 서울의 중앙위원회에 비밀리에 전달해왔다. 사실 서울의 중앙인민위원회 재정부가 북조선에 가서 세금까지 받아왔으며 46년1월까지는 그것이 가능했다.
중국 연안에 있던 조선독립동맹이 북조선에 들어와 그들중에서 남조선에 독립동맹 남조선특별위원회를 조직한다고 한빈 구재수 고찬보 박동철등이 서울에 왔었다.
이들은 독립동맹위원장 김두봉이나 부위원장 최창익의 지시를 받고 온것은 물론이지만 그외에 실질적으로는 소련군 정치부와 김일성의 밀명을 받고 온것이었다. 그들은 일제때 연희전문학교 상과교수로 있던 백남운을 위원장으로 추대했었다.
한빈은 평양의 안한의 소개로 가회동 최승선집에 있으면서 장안파 이영ㆍ정백등과 어울려 박헌영을 헐뜯고 김일성선전을 하고 다녔다.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는 46년2월께 한빈의 분파행동과 민주세력의 분열행동을 엄중히 문책하고 그를 북조선으로 추방해 버렸다.
김일성도 감히 한빈을 재등용하지 못했고 한빈은 그길로 몰락해 버렸다. 박동철도 얼마후 평양으로 돌아가버렸다. 이에비해 구재수와 고찬보는 박헌영에게 충실히 복종했고 그들은 뒤에 남로당 결성에 참가해 구재수는 정치위원까지 되고 고찬보는 청년부장이 되었었다.
사실 그때 우리는 김일성이 제아무리 스탈린과 베리아의 후원을 받는다해도 소련군만 철수하면 보잘것없으며 그의 조직역량도 일개 도당위원장 정도밖에 되지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미군정이 「체포령」을 내려 박헌영을 김일성의 수중에 넣어주고 이승만이 남로당을 철저히 파괴했기때문에 오늘날의 김일성이 존재하게 된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