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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티아마트의 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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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바다는 공포의 대상이다. 거대한 파도와 해일에 쫓긴 인간에게 바다는 분노와 폭력의 상징이다. 그러면서 그 안에 알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신비의 대상이기도 하다.

가장 오래된 수메르 신화에서 바다는 창조의 근원이자 분노의 상징이다. 그 영향을 받은 바빌로니아 서사시(에누마 엘리시)도 그렇게 시작한다. 태초의 혼돈 속에는 민물 신(아프수)과 짠물 신(티아마트)만 있었다. 두 물이 섞이면서 다른 신들이 만들어졌다. 어린 신들이 점점 많아지자 신들의 세계가 소란스러워졌다. 짜증이 난 민물 신은 "어린 것들이 시끄러워 쉴 수도, 잘 수도 없다"며 모두 죽여버리자고 짠물 신을 졸랐다. 음모를 눈치챈 어린 신 중 한 명(에아)이 민물 신을 죽였다. 남편을 잃은 짠물 신은 분노했다. 갖가지 괴물을 만들어 어린 신들을 공격했다. 어린 신의 하나인 마르두크가 괴물들을 모조리 처치하고, 짠물 신을 두 쪽 내 한쪽으로 하늘, 한쪽으로 땅을 만들었다. 혼돈의 바다를 잠재워 우주의 질서를 만든 것이다.

우리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성인오락 '바다이야기'도 신화적이다. 그 게임에서 고래는 '연타'의 예시자다. 이 게임의 세계는 이은상 시인이 노래한 잔잔한 고향의 바다가 아니라 어린 신들을 죽이기 위해 도박 중독이라는 독을 가득 채운 괴물이다.

새천년을 시작하며 정보기술(IT)은 우리의 희망이었다. 2000년 문화관광부 연두보고 때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전자 낚시게임을 시연했다. 서투르지만 "재미있다"고 했다. 게임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쇼다. 2004년 세계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335억2100만 달러.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2005년 8조6700억원, 수출액만 5억6460만 달러다.

미래를 향해 질주하던 우리 게임산업이 도박에 중독됐다. 바다이야기 게임은 일본의 오우미 모노가타리(大海物語.큰 바다 이야기)의 짝퉁이라고 한다. 빠찡꼬의 최신 변종 빠찌슈로(빠찡꼬+슬롯머신)다. 원조는 1895년 미국인 페이가 고안한 슬롯머신이다. 그게 전국에 퍼졌다. '삼국사기'도 "박혁(博奕.도박)에 미치면 나라도, 집안도 망친다"고 했다. 우리가 지향하던 게임산업은 이게 아니다. 내버려두면 건전한 전자게임산업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도박성이 프로그램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바다이야기와 관련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게임산업을 살리는 티아마트로 삼아야 한다.

김진국 논설위원